"통일 민족주의 추구가 역사적 과제" | 학자들이 진단하는 「분단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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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년으로 해방 40년을 맞는다. 동시에 분단 4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인생으로 40년이면 불혹의 나이라지만 이 민족은 과연 불혹의 연대를 열 것인가. 해방 40년은 우리 민족사에서 어떤 역사시대로 위치 지워질 것인가. 학자들의 논의를 토대로 쟁점별로 짚어 본다.
해방과 분단의 「시대상황」
해방 당시 우리는 어떤 사회·경제·정치 체제를 지향하고 있었나.
진덕규 교수(이화여대·정치학)는 당시 『좌든 우든 정치체제는 민주주의여야 한다는데 공통된 입장』 이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에서 기회의 보장을 강조하는 시민 민주주의냐, 소유의 평등을 주장하는 인민 민주주의냐하는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는 것이다.
진 교수는 『이러한 대결 자체가 사실은 당시 지도급 인사들에 한정된 것』 이었다고 말했다. 분열된 지도 계층은 일반 국민의 열광을 바탕으로 이를 합일적인 방향으로 밀고 나가기보다는 당시 나타난 국제 냉전체제의 영향권에서의 자발적일 정도로 편입됨으로써 비극적인 분단 상황을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강만길 교수(고려대·한국사)는 해방 당시 독립운동 세력이 지양했던 바는 사회민주주의 체제였으나 국토가 분단되고 극우·극좌파가 나타나면서 이런 정치 체제는 완전히·제거되고 전혀 대립적인 두 체제가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민족주의, 최선의 처방이었나>
해방 후 분단 40년간 우리가 추구한 민족주의의 실상은 어떤 것이었나. 강 교수는 『남북한 모두 민족주의를 강조했고 우리 민족사의 과제가 민족통일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민족주의 부문은 거의 표면에 나서지 못했을 뿐더러 오히려 분단국가 주의가 강조됐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그런 분단국가주의를 뛰어 넘는 통일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과제라고 주장했다.
그는 분단시대 민족주의가 지향할 바는 민족의 통일, 민주주의의 실현, 민족문화의 수립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통일민족국가를 이룩하기 위해선 민족주의가 불가결하고 그것을 밑받침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보았다.
진 교수는 우리가 남과 북이 공유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인 접합점을 찾아내지도 못한 상태에서 평화통일 논의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통일의 접점을 찾아내는 작업은 한국 사회과학의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한일 관계와 통일 문제>
신용하 교수(서울대·사회학)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일본의 정책은 분단 고정화 정책』 이며 『기본적으로 한반도를 분할·지배(divide and rule)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72년 7·4공동성명을 발표했을 때 가장 실망하고 당황한 것은 일본 국민, 일본 정부, 일본 매스컴이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최근 한반도 통일 문제를 일본이 자꾸 거론하는 것은 한국 민족의 통일을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빙자해서 한반도 문제에 대해 자기네들이 발언권을 갖고 궁극적으로 통일에 대한 견제력으로 작용할 준비 작업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 대해 안병식 교수(서울대·경제학)는 한국 사회가 비록 기본권 등 근대적 생활의 내실에 문제가 없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는 현재의 한국 경제를 중진 자본주의로 봐야 할지 주변 자본주의로 파악해야 할지 확정지을 순 없지만 자본주의 경제 부문이 급속히 팽창, 대부분의 국민들이 공업 중심의 자본제 범주에서 생활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신생 공업국에 대한 분석 개념인 중진 자본주의 이론의 특징은 우선 국민경제에서 자본제의 범주가 압도적인 반면, 상대적으로 농촌 경제의 범주가 그만큼 축소되며 각 산업간의 연관성도 어느 정도 높아진다.
또 선진 자본주의에 대안 기술적·금융적 종속을 면키 어려우며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 즉 개발 독재를 수반하기 쉽다.
안 교수는 『중진 자본주의는 한편에선 국민경제를 형성해 가는 측면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선진 자본주의에 종속되는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주변 자본주의 이론은 선진 자본주의와 후진 자본주의의 관계에 주로 분석의 촛점을 두고 있다. 후진국의 모든 산업은 각각 분리돼 선진 자본주의 각 산업과 연결돼 있어 후진국 내부의 산업적 연관은 극히 취약, 저발전의 발전밖에 없다고 본다.
안 교수는 『후진국의 경제 발전을 관찰할 때 지나치게 국제적 조건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국내적 조건도 동시에 관찰해야 할 것』을 지적했다.

<한국교육의 반성>
김인회 교수(연세대·교육학)는 해방 후 지난 40년간 우리 교육이 잃은 것을 몇가지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선 교육의 주체인 교사와 그 대상인 학생, 즉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인 인간을 상실했다고 설명했다. 교육에서 다룬 인간은 추상적인 인간집단 심리학의 집단검사 결과를 근거 삼아 획일적으로 설명되는 학생들이었지 이 시대 우리 사회 속에서 우리 문화를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의 아이들은 아니였다는 것.
다음은 주체성의 상실이다. 남의 문화에서 만들어진 것을 모방해 가르치면서 짐짓 주체성을 강조하고 우리 것이라고 강변해 왔지만 우리 교육 내용의 편성 원칙부터가 타문화 지향적이었다.
또 하나 교육 방법의 상실. 훈련·주입·연습을 통한 학습 방법을 교육 방법의 본령으로 삼은 결과 학생들 스스로 실현하도록 도와주는 교육 방법은 구호로만 강조됐을 뿐 거의 개발되지 못했다.
또 교실이란 좁은 공간만을 교육의 영역으로 삼음으로써 오늘날 학교 밖으로 갑자기 넓어진 교육 공간을 놓고 당황하고 있으며 학습 시간의 계속적인 증가 또한 오히려 그만큼 많은 시간을 잃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 교수는 끝으로 우리 교육이 민족과 역사의식을 잃은 점을 지적했다. 현재 중심적인 관심과 적응 위주의 방법을 길러온 교육은 정권과 관료의 차원을 넘는 보다 거시적 안목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분단 체제를 고정화하고 과거 역사를 가르치면서도 미래를 전망하고 준비하는데는 소홀히 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민중의 성장>
해방 후 한국 사회가 갖는 큰 특징의 하나는 이른바 민중 세력이 크게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 교수는 『실제로 일제시대보다 해방 이후 성장한 민중 세력의 수준은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일제시대 민중이 생존 현실에 대한 불만에 치중했다면 해방 이후 성장한 민중은 역사의식·정치의식을 강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본 강 교수는 이처럼 질이 높고 잘 조직되고 이념화된 민중운동의 생성 기반이 역시 자본주의의 발전이란 점도 지적했다.
그는 일제시대엔 식민 지배가 길어질수록 반식민운동이 수그러졌는데 반해 분단시대는 40년이나 계속 됐는데도 민중 세계의 통일에 대한 열망은 더 높아만 가고 있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한글 세대의 문화운동>
현재 한글 세대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문화운동은 우리 문화의 깊은 관심과 반성에서 촉발되고 있다.
소흥렬 교수 (이화여대·철학)는 『우리문 화에 대해 이처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관심이 오늘의 젊은 세대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지난 40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 일본 문화나 서양 문화에 물든 기성 세대가 그들을 「무서운 젊은이들」로 보는 것은 그런 문화적 이질감 때문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 40년의 문화적 방황에 외부 상황만을 탓할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책임 또한 문제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민주주의 진영에 속해 있다는 국제적 관계에만 관심을 가졌었지 민주사회의 건설을 위한 사회 문화적 바탕을 마련하는 일엔 별 관심과 계획이 없었다는 것이다.
소 교수는 『한 민족의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사상은 반공이나 반일같은 소극적·부정적 사상으론 충분치 못함에도 지난 40년을 이런 소극적 사상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자신의 적극적인 사상적 바탕을 찾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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