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해외건설, 소프트 부문이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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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한국이 아무리 덥다 해도 중동의 6월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50℃가 넘는 기온에 가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외화를 벌어 국가 경제의 초석을 놓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 뜨거운 땅으로 달려왔을 선배 세대들의 헌신과 노고를 생각하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헌신과 노고, 끈기와 집념, 신뢰와 성실이 기적을 빚어냈다. 2전 3기로 힘겹게 해외시장에서 첫 삽을 떴던 우리 건설 산업이 반세기만에 누적 수주 7000억 달러라는 업적을 달성했다.

 이달 초 나는 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오만 등 중동 4개국을 방문했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 시 논의됐던 수자원·신도시 분야 협력 방안을 가시화하고, 플랜트와 철도 등 대형 프로젝트에 우리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현장은 감동을 주었다. 차로 둘러봐도 1시간을 훌쩍 넘기는 중동 최대 규모 정유 플랜트, 세계 최장 해상교량 등 고난이도 공사를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우리 기업인들을 만나면서 가슴 벅참과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올해는 우리 건설이 해외시장에 진출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전쟁의 폐허를 딛고 짧은 기간에 이처럼 성장한 역사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특히 해외건설 50년 전체 수주액의 절반을 최근 5년 동안 수주해 2013년 매출액 기준 세계 6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자세가 필요하다.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지만, 결코 안주하지 말고 어떠한 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중동이라는 지역 편중, 플랜트 도급이라는 단선적 수주 구조와 추격형 진출 전략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먼저 발주처 재정에 의존하는 도급형 사업보다는 민관협력(PPP, Public Private Partnership) 방식의 투자개발형 사업으로 진출을 확대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 발굴·기획, 금융조달, 운영·보수(O&M) 등 소프트 역량을 더욱 키워나가야 한다.

 최근에는 재정 여건이 열악한 신흥국뿐만 아니라 주로 국가 재정으로 사업을 추진하던 중동 지역 국가들도 민자 사업을 늘려가는 추세다. 이번에 방문한 쿠웨이트의 경우도 2008년 설립돼 민자 사업을 담당하던 민자기술국을 최근 민자사업청으로 개편하고 민자 유치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우리의 개발 경험과 특화된 기술을 적극 활용해 진출 지역 및 공종 다각화에 나서야 한다. 한국형 신도시 모델을 개도국에 전수하고, 건설과 정보기술(IT), 빌딩정보 모델링(BIM) 등 첨단 분야를 융합한 연구개발(R&D)을 추진해야 한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50대에 실명(失明)이라는 위기를 맞았으나 이를 극복하고 ‘실락원’이라는 명작을 저술해냈다. 우리 해외건설이 아직 위기라 말할 수는 없으나, 급변하는 환경 앞에 ‘거안사위’로 임한다면 반세기 동안의 경험과 열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명작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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