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즈 칼럼] 배추 값 올라도 커피 한 잔 값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김연화
(사)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위원장

유례없는 가뭄과 이상 고온으로 ‘채소값 고공행진’ 등의 기사가 연일 언론을 통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기상 호조에 따른 풍작과 세월호 사고에 따른 소비 침체로 가격이 하락했던 전년 동기 대비,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보도도 내놓고 있다. 농산물은 기상여건에 따라 생산량 변동이 심하고 소득 탄력성이 낮아 생산이나 소비가 조금만 변화해도 가격 등락이 큰 특성이 있다. 따라서 대풍작과 소비 침체였던 작년과 단순 비교함으로써 정보가 왜곡이 되는 것에는 신중해야 한다.

 농산물 가격은 이런 특성을 감안하여 지난 5년간 가격 중 최고, 최소치를 뺀 나머지 3년 가격을 평균한 ‘평년 가격’을 쓰고 있으며, 가격 비교 시에는 전년 가격이 아닌 평년 가격을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현재 농산물의 소비자 가격을 보면 배추와 대파는 평년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나 마늘이나 고추 등은 평년 수준이고 토마토, 오이, 호박 등 과채류는 평년보다 오히려 낮다.

 소비자는 기초생필품인 농산물의 가격 폭등 기사를 보면 매우 민감해진다. 그러나 정보의 소통에는 진정성과 공감이 교류되어야 하고 폭등한다는 배추가 우리 가계에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가격정보를 기준으로 6월 15일 현재 배추 소비자 가격은 포기당 3,500원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커피 2잔 가격에 불과한 1만원에 배추 3포기를 사서 김치를 담으면 4인 가족이 한 달은 먹을 수 있다. 또한 배추의 소비자물가 가중치는 1.7로 스마트폰 이용요금 가중치 33.9의 20분의 1 수준이다. 이는 1가구 한달 평균 소비 지출액 265만원 중 스마트폰 요금으로 9만원을 지출할 때 배추 구입비로는 4,500원을 지출한다는 것이므로 가계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는 얘기다.

 우리의 식품 소비패턴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 배추와 무는 가정의 주 식재료였다. 그러나 최근 샐러드용 채소 소비가 늘고 퓨전식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법도 많이 개발돼 소비자의 입맛을 파고 들고 있으며 소량 포장, 대체 식품 등으로 식품소비도 다변화 되고 있다. 결국 한 가지 품목이 가계 경제에 결정타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전체적 흐름을 읽을 필요가 있다.

 식생활 패턴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농산물 수급의 기준을 과거의 잣대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농촌의 근심과 걱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 계속되는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농심은 누가 어루만져 줄 것인가? 그래도 소비자는 우리 땅에서 우리 농가들이 정성껏 키운 안전한 농산물에 대한 신뢰와 기대치가 높다. 생산자·소비자가 상생하고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뜨거운 햇볕아래 놓인 농작물 못지 않게 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현명한 소비를 통해 어려움에 대처해나가는 것이 선진 국민의 자세이며 가뭄과 메르스로 어려움에 처한 농민과 내 가족을 위한 길이 아닐까.

김연화 (사)한국소비생활연구원장·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물가감시위원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