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종교-신앙의 "한국화"에 눈뜬 한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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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해의 종교계는 사건적인 측면에서 영광과 치욕의 명암이 선명하게 엇갈린 해였다.
로마교황 「요한·바오로」2세의 방한과 천주교 1백3위 성인시성, 기독교 1백주년기념선교대회등이 영광의 빛이었다면 박조준목사의 외화밀반출기도, 조계종의 10·28총무원 불법점거, 엉터리 미국신학교의 박사학위남발사건등은 대표적인 어둠의 그림자들이었다.
「회개」의 목소리가 높았던 기독교의 선교목표모색은 내적 성숙 지향과 토착화의 새로운 인식, 사랑의 실천운동, 열띤 해방신학논쟁등이 주요내용을 이루었다.
그러나 회개의 외침이나 축제분위기와는 달리 사회현실에대한 신앙적 응답이 미진했고 명쾌한 오늘의 「신앙고백」이 없었던 점은 아쉽기만했다.
아직도 물량적 교세성장에의 미련을 털어버리지 못한 점과 행사를 통한 「연합」은 두드러졌지만 근본적인 교회일치의 교파극복에는 요원하기만했던 점등도 안타까왔다.
대규모 부흥칩회가 사양화경향을 보였고 불교·기독교 모두의 평신도의식이 크게 고취된 점은 특기할만했다. 평신도대표까지 참가한 천주교 2백주년기념 전국사목회양에서는 굳은 전통인 종신제의 주교보직 임기를 10년으로 정하자는 코페르니쿠스적 건의가 나왔고, 불교 조계종의 10·28사건에서는 신도들이 총무원 청사를 불법점거한 승려들을 몰아낸 「신도반정」이 성공을 거두었다.
불교 조계종 비상종단을 이끌던 일부 소장승려들의 급진적 혁신노선은 기독교 급진신학조류와 궤를 같이하면서 사회참여의 열망으로 투영돼 크게 주목됐다.
조계종의 이성철종정 사퇴파동과 8·1해인사승려대회등도 이같은 소장 승려들의 급진노선과 승단사이의 갈등이 표출된 것이었다.
기독교의 「사랑의 실천운동」은 이디오피아난민구호운동에 연결돼 전국교회가 성탄헌금의 10분의 1을 성금으로 내놓았다. 토착화에의 열망은 도불교가 앞장선 「종교간 협력방안모색」 심포지엄(10월27일 원불교 서울회관)에 기독교 신·구교가 참석, 진지한 대화를 가짐으로써 한층 밝은 전망을 보였다.
타종교및 고유 전통의 이해로 집약되는 기독교 토착화는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천주교 신부의 불교·유학대학원 진학과 갓쓴 예수(안동 「듀봉」 주교)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기독교계는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지상명령이며 기독교신앙의 본질인 「이웃사랑」의 외침을 지루하게 되풀이했다. 그러나 과연 올해에도 연말연시의 일시적 자선구제로 사명을 다했다는 착각에 빠져있지 않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개신교내 보수·진보간의 대칭은 각종 연합행사와 화해의 몸짓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협의회·복음주의신학회등이 발족되고 보수교회가 조직화됨으로써 한층 심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박목사사건은 그가 당회장을 말았던 서울 영락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회였다는 점과 대내외적인 그의 명성때문에 더욱 충격이컸다. 기독교 1백주년기념축제에 「찬물」을 끼얹은 이 사건은 차후 명쾌한 참회가 없었던 점도 아쉬웠다.
로마교항의 한국방문(5월3∼7일)은 이땅에 「화해」라는 용어를 새롭게 조명시켰다. 교황집전의 광주대회 주제였던 이 용어는 그후 기독교계는 물론, 88서울문화올림픽 주제(「화해의 제전」)후보로까지 확대됐다.
해방신학논쟁은 로마교황청의 「보프」신부 청문회로 세계적 관심을 모으면서 한국기독교계에도 다시 한번 파고를 높였다.
그러나 이 논쟁은 신학의 이데올로기화 문제, 마르크시즘의 사회분석법 원용 시비등에 초점이 모아진 진부한 것이었다.
한국 민중신학의 개척자인 서남동박사의 사망과함께 전개된 민중신학논쟁도 별다른 발전적인 명을 보이지 못했다.
천주교 여의도시성식은 집회후 쓰레기 한점없는 「질서」를 보여준 흐뭇한 미담을 남겼다.
개신교는 1백주년을 맞아 연3백만명이 운집한 기념선교대회(8월 15∼19일·여의도)외에도 세계교회기도성회(6월5∼11일·뚝섬유원지) 신학자대회(10월10∼13일·서울올림피아호텔) 등 갖가지 크고 작은 기념집회들이 줄을이었다.
천주교와 개신교 각종기념행사들의 주제였던 「빛」 「평화」 「사랑」과 불교계의 안정 열망이 새해에는 소담스런 열매를 거두어야겠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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