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우리 기억은 도덕적일까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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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몇 일전,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경기에서 희대의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경기후반인 7회 말, 조이보트(32. 신시내티)라는 선수가 3볼을 4볼로 착각하고 1루로 걸어 나간 것이다. 경기는 계속됐다. 조이보트는 선구안이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인 선수다보니, 심판들은 물론이고 관중석을 가득 메운 수만 명의 관중들 중 누구도 4볼이 아님을 알아채지 못했다.

팬들은 조이보트가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볼넷 세 차례, 출루율 네 차례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혹시 그러한 기억이 조이보트 자신과 관중 모두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도대체 기억이란 무엇일까.
최근 신경숙 작가의 표절시비가 뜨겁다. 개인의 도덕적 문제에서부터 문단권력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비판의 스펙트럼이 넓다. 어느 조직이든 사람이 모이면 권력이 생기고, 권력은 생기는 동시에 조직의 역기능적 문제를 수반된다. 어디 이러한 문제가 새로운 이야기겠는가. 문학이 다른 분야보다 순수한 분야이기 때문에 더 많은 화제가 되었을 것이다.

신경숙 작가를 옹호하고픈 생각도, 시류에 따라 무작정 비판하고픈 생각도 없다. 그저 그녀가 남긴 말이 귀에서 맴돈다. "아무리 지난 기억을 뒤져봐도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녀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반성의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많다. 소극적이고 늦은 대응도 진정성을 의심받는데 한 몫 했다.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기억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사실이 아닌데도 주변에서 그렇다고 하면 한번쯤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국 미시간 홉 대학의 마이어스 사회심리학교수에 의하면, 우리의 기억은 기억은행에 예치되어 보관되는 경험의 정확한 결과물이 아니며, 인출시점에서 기억은 재구성된다고 한다.

또 기억과 관련한 실험을 했는데 참가자들에게 뛰고, 걸려 넘어지고, 뒹굴고, 창문에 손이 끼이는 등 가상의 어린 시절 기억들을 생생하게 상상하도록 요청했을 때, 1/4의 참가자가 이후 이 가상의 사건을 실제 일어난 것으로 기억했다고 한다.

유권자에게 응답을 구하는 여론조사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정치조사를 할 때, 배경질문이라는 것을 한다. 1~2년 전에 선거에서 어느 후보에게 투표했는가를 물어본다. 그러면 결과는 대체로 이긴 후보 또는 언론노출이 많은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응답이 실제 후보득표율보다 높게 나타난다.

신경숙 작가는 표절시비의 한 가운데서, '우국'과 '전설'을 비교해 보니 정말 내가 그랬을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표절의혹을 제기한 이응준(45) 작가도 '표절을 판단하는 가장 강력한 기준은 작가의 양심'이라고 했다.

그녀가 표절을 했을 수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변명에는 기억에 대한 솔직함이 담겨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억은 나쁜 것은 작게, 좋은 것은 크게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고, 자신이 분명히 그럴 것이라고 판단한 일에 반대되는 정보는 애써 외면하거나 찾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새로운 모습의 신경숙 작가를 다시 볼 수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양심은 무엇에 기초하여 확인할 수 있을까. 양심은 기억에 기초하여 확인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종류의 기억은 무의식에 기초한다.

우리 주변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로 뒤덮여 있다. 수천 테라바이트 이상의 빅 데이터는 수시로 발생하고 미국의회도관의 방대한 인쇄물량 정도는 매일 생성된다. 정보와 지식의 대홍수에서 문학은 무엇에 기초하여 창작되는가. 기억의 문제에 도덕적 잣대를 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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