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피 푸드’… 비만 주범이라니 억울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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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식품 안전과 관련해 가장 많은 공격을 받는 대상은 무엇일까. 바로 설탕이다. 하지만 설탕은 억울하다. 비과학적인 연구결과들이 과장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 설탕을 1인칭 화자로 가정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설탕의 항변을 풀어봤다.

나는 설탕입니다. 기원전 4세기께 인도에서 태어났지요. 인도 사람들이 엄마인 사탕수수의 즙을 졸여 나(설탕)를 탄생시켰대요. 어릴 적 나는 인기가 많았습니다. 의사들도 나를 사랑했답니다. 유럽에선 18세기 전까지 나를 모든 환자 치료를 위한 처방에 썼다고 하니까요. 특히 위장병이 있을 때 지사제 대용으로 나를 꼭 사용했대요.

하지만 나는 요즘 좀 슬퍼요. 예전에는 나를 귀한 녀석이라며 소중히 대해 줬는데, 요즘은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해요. 제가 든 음식을 먹을 때는 죄책감마저 든대요.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틈만 나면 나를 공격해요. 나를 먹으면 비만이 되고, 심장병·당뇨병·치주질환, 심지어 정신건강까지 위협한다고 걱정해요.

어릴 적엔 인기 많았어요

나는 억울합니다. 참 긴 시간 인간에게 많은 것을 줬거든요. 나는 밥·빵처럼 사람의 3대 필수영양소인 탄수화물에 속해요. 몸속으로 들어가면 포도당과 과당으로 나뉘어 세포의 주에너지원으로 활용되지요. 영양학자들은 하루 칼로리 섭취의 30~50%를 탄수화물로 하라고 권고하고 있어요.

특히 뇌에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뇌는 포도당을 저장할 만한 공간이 없어요. 혈액 속 포도당 농도가 떨어지면 뇌기능에 문제가 생겨요. 이 때문에 에너지가 필요할 때 뇌는 즉시 당분을 섭취하도록 지시해요. 나를 먹으라는 명령이죠.

또 나는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해피푸드’예요. 나를 먹으면 뇌에서 행복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분비된답니다. 심리 안정과 인지력 향상에 도움이 된대요. 하지만 1970년대 일부 학자는 내가 과잉행동을 유발한다는 주장을 했어요. 후에 근거 없는 것으로 판명돼 얼마나 속이 시원했던지요. 오히려 스트레스로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설탕이 충동 감정을 누그러뜨린다는 연구 결과(미 뉴사우스웨일스대 톰댄슨 박사팀)도 있었어요.

이제 제 스스로 변호해야 할 것 같아요. 2007년 미 캘리포니아 지역 라디오 방송국에서 물 많이 먹기 대회가 있었어요. 제니퍼 스트레인지라는 아가씨가 경기 후 극심한 두통 등 물 중독 증세를 호소하다 사망한 사건인데, 기억하시나요? 내가 이런 얘길 하는 이유는 어떤 음식이든지 많이 먹으면 독이 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예요. 저도 적당히 먹으면 참 좋은 식품이지만 많이 먹으면 독이 될 수도 있어요. 나를 무조건 좋아해 달라고 떼쓰는 건 아니에요. 저를 적당히 즐기시고 장점만 취해 달라고 부탁드리는 거예요.

체중 증가 연관 없어요

나는 크게 세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째, 나를 먹으면 살이 찐다고요? 어떻게 보면 이제 상식으로 돼버린 설탕 섭취와 비만. 그러나 이 사실은 아직 학계에서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에요. 많은 의사와 영양학자들이 나의 위험성을 주장하고 증명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기존 연구는 사람의 일상적인 섭취 수준의 수십 배에 달하는 양을 사용했어요. 신뢰도가 떨어지니 대다수의 영양학자나 의사들이 동감하지 못한 거죠.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식품을 통해 나(첨가당)를 많이 먹는 것과 체중 증가를 연관지을 수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또 국제 저널인 ‘식품과학과 영양 비평’에서도 일상적인 섭취량(하루 136g 이하)을 유지하는 경우 과당 섭취와 체중 증가 사이엔 어떠한 상관관계도 나타나지 않는다고 발표했어요. 결국 체중 증가는 음식물 과다 섭취나 운동 부족 때문이지, 저 때문이 아니라는 게 밝혀진 거예요.

둘째, 저를 먹으면 당뇨병이나 심혈관질환에 걸린다고 아는 분이 많아요. 이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당뇨병은 몸속 당분이 과도해 생기는 병이 아니라 혈액 내 당 수치를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 시스템이 고장나 생기는 거예요.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하니 199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직접 실험을 했어요.

1976년부터 10년간 설탕 섭취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나와 당뇨병은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왔지요. 나는 뛸 듯이 기뻤어요. 2001년에는 미 당뇨병학회에서 하루 섭취 열량 10~35%까지 설탕으로 섭취해도 혈당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도 말했죠. 심혈관질환도 그래요.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1997년과 2003년 확인한 결과, 설탕이 심혈관질환 발생에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2013년에는 에너지 섭취의 최소 25%에 달하는 양을 녹말 대신 설탕으로 섭취하는 연구도 진행했었는데, 심혈관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혈중지질 농도나 포도당과 인슐린 양에 대한 부작용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답니다.

셋째, 충치 유발 누명이에요. 충치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식물이 치아와 들러붙어 있는 시간이에요. 나는 치아 표면에 잘 부착되지 않고, 물에 잘 씻겨요. 오히려 빵·국수·밥 등의 전분질 음식이 입속에 남아 있는 시간이 길어 충치 유발 가능성이 커요.

권장 섭취량만큼 드세요

이제 좀 속이 후련하네요. 죄가 없는데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눈빛, 힘겨웠거든요. 그럼 날 무한정 많이 먹어도 되냐고요? 그건 아니에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떤 식품이든 권장 섭취량만큼 먹는 게 중요해요. 단백질도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지만 권장량 이상 먹으면 신장에 무리가 가요. 설탕도 과량 섭취했을 때는 단백질이나 물과 마찬가지로 몸에서 탈이 날 수 있어요.

한국인의 하루 평균 당 섭취량(가공식품을 통한 당 섭취)은 40g입니다. 권고기준은 50g 미만(총 섭취 열량 2000㎉ 기준)인데, 그리 높은 편은 아니죠. 지금처럼만 잘 조절해 드시면 됩니다. 한 가지 조언을 더 드리자면 음료수는 하루 한 캔 정도만 드세요. 제가 가장 많이 들어가 있는 게 음료수예요.

특히 청소년은 음료수를 통한 당 섭취가 많다고 하니 조금은 주의할 필요가 있어요. 설탕, 이제 ‘무조건 줄이자’ 대신 ‘제대로 알고 먹자’, 아시겠죠?

배지영 기자 jyb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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