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효력」상실여부가 초점|4호 위반 협의로 10년 1개월만에 재판받는 강신옥 변호사|"유신헌법 폐지로 당연 실효", "새헌법 비상조치권 적용가능"(대법판사 이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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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유신헌법이 폐지됐는데도 과연 긴급조치의 효력이 살아있을까.
그동안 법조계에서는 이문제를 놓고 설왕설래가 계속 됐으나 아무도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대법원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려왔다.
일부 대법원판사들은 긴급조치의 근거인 구 헌법 (53조·대통령의 긴급조치권) 이 폐지되었으므로 당연히 긴급조치도 실효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해왔다.
그러나, 일부는 새헌법 51조의 비상조치권을 들어 반드시 실효된 것으로 볼수 없다는 견해도 있었다. 이 때문에 대법원은 강신옥 변호사 사건을 82년2월「대통령의 긴급권」이란 제목으로 전원합의체에 넘겼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보류해놓고 있었던 것.
강변호사가 구속되자 l심에서 93명, 상고심에서 1백25명의 변호사가 선임계를 내는 등 사법사상 최대규모의 변호인단이 구성되어 변론했었다.
특히 당시 고재호· 이병린·박승서변호사등 원로 재야 법조인들이 쓴 1백여 페이지의 상
고이유서와 강변호사 자신이 쓴 상고이유서등은 『대한변호사 협회지』등에 실려 법조계에서는 긴급조치나 법정모욕죄 등에 대한 교과서역할을 할 정도의 명쾌한 이론으로 유명하다.
대법원에서 가장 오래된 형사사건인 사건번호 74도3501 (긴급조치위반)·3502(법정모욕) 는 과연 어떤 형태로 매듭지어질 것인가 궁금하다.

<재판결과>
▲원심파기의 경우=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할 경우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되돌려 보내 다시 재판토록 하는것이 법에 따른 절차이지만 이사건의 경우 원심인 비상고등군법회의가 계엄해제와 함께 없어져 처리가 불가능해진다.
이같은 경우는 대법원이 74년4월 파기환송한 민청학련사건관련 김영준 (36)·송무호 (32) 피고인등 연세대생 2명이 비상군재의 해체로 「갈곳없는 사건」 이 되어 영구 미제로 남게된 전례가 한번 있었다 (중앙일보 82년11월8일자 11면보도) . 「재판부 실종」으로 영구 미제가 되더라도「피고인은 확정 판결때까지는 무죄추정」이란 법 정신에 따라 강씨는 변호사업무등 사회활동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드물기는 하지만 파기와 동시에 자판하는 일도 있어 재판부가 없는 파기 환송보다는 자판쪽을 택할가능성이 크다.
▲상고기각의 경우=강변호사는 원심대로 징역10년·자격정지 10년의 유죄가 확정된다. 그렇더라도 유신헌법이 폐지된 지금 새삼 구속은 하지 않고 형 집행을 미루다 「사면」등을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법조계의 견해. 유죄가 확정되면 물론 변호사자격도 정지된다.

<인청학련 사건>
74년4월 당국은 대학생들이 「전국민주학생총련맹」을 결성, 국가변란을 획책했다며 관련자 68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이때 발표된 명단은 여정남· 조영내· 장기표· 황인범·유근일·강구철·정문화·나병
식· 이근성· 김영준씨등 서울대를 중심으로 전국의 대학생·청년들이 대부분이었다.
당국은 이들이 공산세력의 조종을 받아 학원에 침투했었다고 발표했었다.
이에 앞서 74년4월 3일 당시 박정희대통령은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하고 민청학련과 이에 관련되는 단체를 조직하거나 가입하는 행위를 일체 금하고 위반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최고 사형에 처하도록 했었다.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은 그후 모두 군재에 회부돼 유죄선고를 받았으나 감형·사면등으로 풀려나 대부분 복권되어 정상적인 사회활동을하고 있다.

<강신옥 변호사>
서울대 법대재학중 고시행정과 (10회)에 합격하고 사법으로 군복무중 고시사법과(11회)에도 합격했으며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법학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구속은 당시 국내 매스컴에는 보도되지 않았으나 74년 필리핀의 세계법률가 대회에 모인 8천여명의 세계 법조인들어 강변호사 구속사실을 성토의 대상으로 삼아 국제적으로 화제가 됐었다.
이 사건 때문에 2년쯤 변호사 생활을 못하기도 했으나 그 후 변호사활동을 재개, 최근에는 김재규의 변호인이기도 했고 이철희·장령자사건의 임재수피고인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또 지난6일 동경에서 결성된 아시아 인권위원회에서 아시아인권위원으로 뽑혔다.『법률가로서 변론을 통해 긴급조치를 비판했을뿐이므로 무죄를 확신합니다. 그동안「피고인」으로 남아있어 보이지 않는「줄」에 얽매여 있었는데 이제 그줄을 풀게되는 것 같아 홀가분할 뿐입니다.』
「10년 피고인」이던 강변호사는 대법원에서 송달된 재판기일 통고서를 내보이면서도 담담한 표정이었다.<권일·허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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