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광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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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서깊은 도시에는 으례 기념조각작품들이 많다.
기념조각은 미술품육성서 동시에 사회성과 역사성을 지닌 공공의 자산이다.
거기서 한시대의 가치관과 조형기술이 나타날뿐 아니라 민족과 역사에 무한한 이념적 지표를 보는사람도 있다.
유럽의 도시들은 특히 역사와 예술의 의미를 새겨놓는데 남다른 재간이 있는가 보다.
런던의 트라팔가르광장에선 하늘을 찌르듯 서있는 「넬슨」기념탑과 그것을 호위하는 사자상을 볼수 있다.
그러나 거리의 작은 광장마다 무수히 들어선 동상군은 더 인상적이다. 자국의 위인만이 아니고 세계사의 인물을 모신 것은 더 감동적이다.
「윈스턴·처칠」상과 함께 「에이브러햄·링컨」상이 있다. 호국 외에 인류애의 이상을 생각케 한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는 음악가의 기념비와 동상들이 곳곳에 서있다.
시립공원등에서 「요한·슈트라우스」「베토벤」「슈베르트」 「브람스」 「모차르트」상을 만난다. 세계적 악성들을 배출해낸 음악의 도시다운 품격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런 동상들로 빈에선 음악의 풍요함보다 더 값진 역사와 예술의 인간생활을 느낄수 있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엔 브로그넬공원이 있다. 그곳은「구스타프·비겔란」의 조각으로 유명하다.
그 한 사람이 58개의 동상과 1백21명의 군상으로 된 오벨리스크와 북구신화를 주제로한 분수등 엄청난 조각들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다만 감탄할수 밖에 없다.
우리 도시들에 기념조각과 동상이 거의 없다는건 잘 알려져 있다.
역사적 인물의 화상조차 남아 있는 것이 적으니까 석상이나 동상을 기대하는게 무리일 것도 같다.
그러나 최근 동상시대가 도래한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순신장군상을 비롯해 세종대왕·사명대사·율곡·원효·김유신·을지문덕상등은 벌써 시민에게 익숙해진 동상이 됐다.
서울시는 이미 신축건물의 경우 건축비의 1%를 예술적인 장식에 쓰도록 조례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물동상의 경우 졸속과 고증문제로 졸작을 맙유못해 빈축을 사는 일도 있다. 다른 예술조각도 마찬가지다.
참된 의미의 기념물이 되고 사회적·역사적 가치를 갖는 작품이어야 한다는게 절실한 요청이다.
서울시가 내년 서울대공원에 현대의 인물들을 동상으로 조성해 함께 전시하려는 의도엔 수긍되는 점이 있다. 하지만 역사의 의미와 정신을 빼고 다만 정치인 위주의 동상을 모아놓는다는 것은 때로 공허하다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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