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계약서 약속 어겼다고 계약 해제할 수 있나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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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기자]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도가 시행된 지도 10년이 다 되 가지만 여전히 주택시장에선 다운계약서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다운계약서는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매도자와 매수자가 합의해 실제 거래금액보다 낮은 가격으로 작성하는 계약서를 뜻합니다.

이 계약서를 바탕으로 세금을 신고 하면 매도인은 양도소득세를, 매수인은 취득세를 줄일 수 있습니다. 불법인줄 알면서도 다운계약서를 쓰는 이유입니다.

최근에는 분양권 시장이 활기를 보이면서 거래가격을 허위로 작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취득 후 1년 이내 분양권을 팔면 50%의 세율이, 1년 이상 2년 이내면 40%의 중과세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다운계약서 유혹에 빠지는 겁니다.

다운계약서 작성은 명백한 불법이고 탈세입니다. 그렇다면 불법행위인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한 약정을 위반했다고 본 계약인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을까요?

또 이 계약이 해제된 책임은 다운계약서 작성을 요구한 쪽이 지는 걸까요? 아니면 다운계약서를 작성하기로 한 약속을 어긴 쪽이 지는 걸까요?

최근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례가 나와 눈길을 끕니다.

[사례]매수인 김씨는 매도인 이씨의 단독주택을 1억5000만원에 매수하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금 4000만원을 지급했습니다. 이씨는 양도소득세를 줄이기 위해 실제 매매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다운계약서를 써달라고 요구합니다. 대신 집값을 500만원 깎아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김씨는 이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매매대금을 7400만원으로 하는 다운계약서를 써주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내용은 계약서에 특약으로 포함됐습니다.
한달 뒤 잔금지급일, 김씨는 1억1000만원을 준비해 이씨를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김씨는 남편이 공직자여서 재산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다운계약서를 써줄 수 없다고 합니다.매도인 이씨는 “다운계약서를 써주지 않을 거면 500만원을 깎아줄 수 없다”면서 소유권 이전을 거부합니다. 결국 매수인 김씨는 매매계약 해제를 통보하고 이씨를 상대로 위약금 소송을 냈습니다.

다운계약서 약정 어겼어도 소유권 넘겨줘야

위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매수인 김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김씨가 다운계약서 작성 특약을 어겼다고 하더라도 이씨는 소유권이전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판결이 나온 이유는 대법원이 다운계약서 작성 특약을 부수적인 사항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부수적인 약속을 어겼다고 주 계약인 매매계약 자체를 해제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다운계약서 작성에 합의한 것은 매도인 이씨가 양도소득세를 덜 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기 위해 이뤄진 것일 뿐, 매수인 김씨의 다운계약서 작성의무와 이씨의 소유권이전등기 의무가 동시이행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매도인 이씨는 계약금 4000만원의 2배인 8000만원을 김씨에게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합니다. 만약 김씨가 매매계약을 계속 진행하길 원할 경우, 매도인 이씨는 깎아주기로 한 집값으로 소유권을 넘겨줘야 합니다.

다운계약서 적발되면 세금 폭탄…투명한 거래가 현명한 투자비법

달콤한 유혹에 빠져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가 발각되면 매도인과 매수인은 세금과 가산세 폭탄을 각오해야 합니다. 계약 당사자 모두 취득세 3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담해야 합니다.

매도인은 본래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는 물론이고 신고ㆍ납부불성실에 대한 가산세까지 부담해야 합니다. 매수인은 차후 매각하더라도 1세대1주택 양도소득세 비과세를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고 중개업자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 판례로 거래 상대방에게 다운계약서 작성을 강제하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 적발되면 적지 않은 금전적 손실이 예상되는 만큼 투명하게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투자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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