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사회의 기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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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원시시대 항해의 길잡이는 별이였다. 망망대해를 저어가는 항해사는 그들에게 익숙한 해와 달과 별자리를 기준해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구름이 짙게 뒤덮인 칠야이거나 항해사가 별자리를 잘못 보았을 경우에는 배는 가야할 방향을 알 수 없어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나침반이 있어 아무리 흐리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중에도 방향을 잃을 염려는 없다. 그러나 만약 이 나침반이 잘못됐거나 고장이 생긴다면 배는 물길을 잃고 표류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나침반을 우리사회 질서의 기초를 이루는 기준이나 규범이라 비유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잘못되거나 지켜지지 않을 때 우리들 사회의 신뢰와 질서는 뿌리가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예는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작금 신문지면을 장식한 두가지 사건도 사회질서의 기초를 흔드는 일로 예외가 아니다.
서울YMCA가 서울시내 보석감정업소 몇 군데를 대상으로 다이아몬드에 대한 감정을 실시해 보았더니 그 가운데 16.7%인 세 군데만 제대로 감정을 했을 뿐 나머지대부분 감정소의 감정이 엉터리였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본래의 등급보다 높은 품질로 평가를 했다고 하니 결과적으로 제값보다 훨씬 비싸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어찌 다이아몬드 한 품목에 한한 일이겠는가. 이로 미루어 국내 각종 보석의 거래질서가 얼마나 엉터리이며, 소비자들이 보는 피해가 적지 않으리란 짐작은 쉽게 가능하다.
연탄의 열량검사 과정에서의 부정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어느 연탄공장의 열량검사원이 탄광업자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뇌물로 받고 연탄제조에는 전혀 쓰지도 못하게 돼있는 버럭탄(무급탄)을 열량이 높은 1급탄으로 판정해준 것이다.
보석은 돈있는 사람들의 사치행위이니 별것이 아닐 터이고, 연탄 부정판정은 극히 부분적인 비리라해서 가벼이 보아 넘겨서는 안될 중대사라는 점은 이것이 항해에서의 나침반이나 다름없는 가치감정의 고의적인 왜곡이기 때문이다.
사회질서의 기본은 그 사회가 전통적으로나 법적으로 정한 기준이요 규범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 기준을 객관적으로 엄정하게 감정·판별해주는 것이 이른바 감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나 기관이다. 이들이 그들 몇 사람의 탐욕을 만족시키는 수단으로 감정을 왜곡하고 부정을 일삼는다면 이는 사회의 기본을 뿌리째 흔들어놓는 중대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나침반이 고장난 배가 바다 위를 표류하다가 좌초하거나 난초하듯이 가치의 기준을 왜곡당한 사회는 신용과 신뢰가 흔들리고 결국 질서의 혼란이라는 파국을 면치 못할 것이다.
보다 더 객관적이고 엄정한 감정제도를 확립하기 위해 감정사의 자격부여, 감정과정, 감정품목에 대한 지속적인 품질관리등에 대한 개설책이 보완돼야만 하겠다.
신뢰사회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서는 소비자, 즉 국민들의 감시와 고발도 끊임없이 목청을 높여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기본을 흔드는 부정과 비리를 『귀찮다』는 이유로 또는 『그저 그런 것이 아니냐』하는 체념으로 묵인하거나 방관하고만 있다면 우리는 영원히 불신과 무질서의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신뢰사회의 구축은 정책과 국민의 힘이 동시에 작용하는데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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