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지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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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요즘 우리 주위에선 예를 알자는 운동이 조용히 번지고 있다. 신문의 고정칼럼들이 그렇고, 여성잡지들도 즐겨 그런 문제를 특집하고 있다. 무슨 영문일까.
미국서도 최근 『미스 매너즈』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 「매너즈」는 사람 이름이 아니고 「예의」라는 뜻이다. 「예의」양이라는 제목은 한결 친근감을 주는 것 같다. 저자는 「주디드·마틴」이라는 한 중년부인.
이 책은 양부모를 대하는 예에서부터 혼례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 별의별 매너들을 다 가르쳐 주고 있다. 이혼 부부의 예의까지 소개되어 있다.
물론 예의의 법속은 동서가 다르지만 저자가 그 책 머리말에서 하는 얘기는 어쩌면 그리도 같은지!
『어린이를 키우는데 무엇보다 첫손가락으로 꼽아야할 연장은 모범을 보여주고(example), 잔소리(nagging)를 하는 일이다』
예는 저절로 아는 것이 아니라 가르쳐야 한다는 충고가 새삼 인상적이다.
「예」라는 한자를 뜯어보면 동양사람들의 「예」관을 알 수 있다. 신(시)에게 술을 올린다(풍)는 뜻이다. 순자(중국 전국시대 유학자)가 예를 가르치며 생명의 근본인 하늘과 땅을 섬기는 것이라고 한 말과도 통한다.
그러나 이런 예도 시속은 벗어나기 어렵다. 『먹고 입는 것이 풍성해야 예의를 안다』(의식족이 지례절)는 말이 그 뜻이다. 순자보다 4백년 앞선 춘추시대의 법가관중이 한 말이다. 그는 쌀이 곳간에 차고 난 다음에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한 다음에 영욕을 안다고 했다.
비슷한 말은 서양에도 있다. 『배가 고프면 똑바로 설 수 없다』는 영국 속담이 그것이다.
매사를 돈으로 따지러 드는 서양사람들은 더 실감 나는 속담을 갖고 있다. 『예의 차리는데 돈 드나』(courtesy costs nothing)라는 말이다.
오늘 우리 주위에선 두 가지 특이한 예를 보며 고소를 짓는 많다. 하나는 글자 그대로 「비례」, 또 하나는 「과례」다. 어느 쪽도 본받을만한 예의가 아니다.
옛날 응대·진퇴·선행등의 예를 소개한 『소학』은 예절의 기본으로 부자자효, 형애제경, 부화처유, 고(시어머니)자부(며느리)청을 가르쳤다.
천년 가까이 된 얘기지만 지금도 공감이 간다.
그러나 오늘을 사는 지혜로 삼으려면 오늘의 시속에 더러는 맞아야한다. 생활의 패턴과 질이 다른 옛날의 예에 집착하면 그런 예는 거추장스럽기만 하다. 중앙일보의 주연재 칼럼으로 등장한 「예」기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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