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인들의 특집」「문학사상」 11윌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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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84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신인들의 신작특집(「문학사상」 11월호) 을 유심히 읽어보았다. 그중 문형렬의「오월의꿈」, 박상기의 「어떤 살의」, 그리고 정수남의 「분실시대· I」이 흥미로왔다.
담담한듯 과장된 필치로 군대생활의 한 삽화를 수필처럼 써나간 「오월의 꿈」은 섬세하다. 그러나 섬세함이 섬약으로 기울어 소설을 쓰기에는 이 작가의대가 너무 여리지 않은가우려된다.
「어떤 살의」는 최근 소설로는 드물게 도시 하층민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농촌에서 올라와 노동자합숙소에 기거하며 포장마차로 생계를 잇는 만복이가 올림픽경기를 대비한 도로단속에 걸러 폐업하게되는 이야기를 무리없이 처리한 이 작품은 작가의식의 한끝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단편이라는 제약을 감안해야 하지만, 도시빈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마치 1920년대의 신경향파처럼 아직은 소박한 단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가난한사탕들의 속병…을 써보고싶다』는 작가의 포부와 함께 앞으로의 작업을 기대해 본다. 「분실시대·I」은 제목이 진부하지만 분단문제를 측면에서 다룬 주목할 작품이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월남 제1세대인 아버지와 제2세대인 아들들의 갈등을 통해서 통일 문제를 짐짓 젖혀두고자 하는 분단체제의 사회심리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그러나 통일문제가 이산가속의 재회수준 곧 심정적인 망향심리에 머물러 있고 그럼으로써 아버지 세대를 너무미화하는 느낌이 든다. 과연 분단의 책임으로부터 월남 제1세대는 면제될 수있을 것인가? 물론 분단의원전적 책임은 미-소의 냉전체제에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책임을 전적으로 외부적 요인에만 밀어버릴수 없으며 우리 자신의 과오와 미숙을 엄정하게 따지지 않을수없다. 때문에 나는 아버지의 자살을 통해 새로 눈뜬 주인공의 각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하회를 기디릴 뿐이다.
어느덧 1984년도 저물어 간다. 소설의 침체를 우려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만발한 중에도 한햇동안 쉼없이 많은 소설이 발표되었고 그중 주목할만한 좋은 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의침체가 극복되었다고 당당히 얘기할수 없다. 80년대소설의 침체란 최근에 들어와서 소설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80년대 소설이 우리시대를 총체적으로 포괄할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의 틀을 제시하지 못하고 70년대 소설의 수준을 맴돌고 있다는 뜻이다.
아직도 『삼국지연의』가 가장 오래된 베스트셀러라는점을 유의해야 한다.
초야에서 몸을 일으켜 천하대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쟁패하는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종횡무진으로 풀어내고 있는 이소설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역사의 양감 즉 우리가 역사안에 살고 있음을 생생하게 확인시키고 있다.
우리소설에 부속한 것이 바로 이점이다. 우리소설은이 핵심적인 부분을 그저 권력투쟁사라고 외면하고 주변적인 이야기에만 사로잡혀 그야말로 잔소리로 떨어지고 만것이 아닌가? 민중을 그 자체로서 분리해서 보는것이 아니라 지배층과의 관계속에서, 다시말하면 진정한 의미의 정치적 관점을 수립할때 소설은 잔소리가 아니라 로망으로 들어올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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