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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기술상 대상 박영호 박사, 끈기의 실험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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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번도 안 된다는 생각한 적 없습니다. 신약개발이란 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인데 종교같은 신념이 있어야지요."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차세대 통증치료물질 PAC20030으로 14일 특허기술상세종대왕상을 받은 ㈜태평양 의약건강연구소 수석연구원 박영호(37) 박사. "그동안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결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아 준 연구진에 고맙다"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PAC20030의 개발은 고추의 성분에 대한 연구에서 시작됐다. 고추 속에 있는 '캡사이신'이란 물질은 몸 안에 들어가면 감각신경에서 전달자 역할을 하는 '바닐로이드 수용체'와 결합, 매운 맛을 내게 된다. 그런데 사실 '맵다'는 것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그러므로 이 과정만 면밀이 분석하면 통증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법도 밝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서울대 약대 서영거.오우택.박형근,숙대 김희두 교수 등이 이 연구에 합류했다.

박 박사는 3년여의 연구 끝에 바닐로이드 수용체의 활성화를 막을 수 있는 물질 개발에 성공했다. 마약성 성분에 의존했던 기존 진통제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라 이를 응용하면 진통제 뿐 아니라 새로운 기전의 천식.요실금 치료제 등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했던 만큼 곡절도 많았다. 전세계적으로도 이 분야에 대한 기존 연구 자료가 많지 않았기에 모든 실험을 스스로 기획해야 했다. 처음 PAC20030을 만든 직후 그 효능을 알아보기 위해 자기 얼굴에 직접 '임상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이 물질을 일단 얼굴에 바른 뒤 통증을 주기 위해 고농도 젖산을 그 위에 묻혔다. "젖산을 꽤 많이 발랐는데도 멀쩡하더라구요. 신이 나 농도를 계속 높였다가 얼굴에 시뻘건 염증이 생겨 한동안 고생했습니다."

조금만 묻어도 굉장한 자극을 주는 캡사이신을 다루는 일도 고역이었다. 캡사이신 용액을 옮기다 실수로 튀기라도 하면 몇분 뒤 얼얼해지면서 어김없이 피부에 신호가 왔다. 닦아도 소용없고 찬 물에 담가두는 수 밖에 없었다. PAC20030은 이제 전임상과정을 마치고 올해 중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 들어갈 예정이다. 예정대로라면 7년 뒤 쯤 상품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 초 독일에 본사를 둔 다국적제약사 '슈바르츠 파르마'가 이 특허기술을 사갔다. 기술료는 총 1억1075만 유로(약 1500억원). 선수금으로 325만유로(48억원)을 받았다. 아직 임상이 끝나지도 않은 물질의 특허값 치곤 이례적인 액수였다. 박씨는 "진통제로 시장에 나올 경우 연 매출 1조원대의 소위 '블럭버스터'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김필규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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