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유럽최대 영·화 합동기업 『로열 더치 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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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1월 어느날 하오 영국런던에 있는 로열더치셸 그룹 (Royal Dutch/Shell Group)의 본부에는 갑자기 전화벨이 잇따라 요란히 울리기 시작했다. 『영국과 네덜란드에 본거지를 둔 로열더치셸이 미국내 자회사인 셸오일사의 나머지주식 30·5%를52억달러에 사들여 1백%의 자회사로 만들기로 했다』 는 소식을 듣고 신문기자들이 걸어온 확인전화였다.
쇼킹한 이 뉴스는 그러잖아도 대형합병극이 벌어지고있는 미석유업계에는 또하나의 충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투자대상을 찾고있는 다국적기업 로열더치셸로서는 경영전략의 당연한 귀결이기도 했다.
지난해 로열더치셸의 현금보유는 약80억달러. 여기에 비해 네덜란드의 석유·가스개발만으로도 매년 10억달러의 이익을 올리고 있어 셸사의 완전소유에 40억달러를 쏟아넣고도 40억달러의 자금여유가 있다.
그러나 세계석유시장이 요즈음처럼 침체한 상태에선 마땋한 투자기회가 많은 것은 아니다. 천연가스와 기타 대형프로젝트는 빛을 잃어 많은 돈을 새로 투입해야할만큼 인기는 없다.
그럴수록 매년 10∼12%의 매출성장을 목표로 하는 로열더치셸로서는 효율적 투자대상의 발견이 급선무다. 바로 여기서 거금을 투자할만한 대상은 미국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린것이다.
사실 같은 메이저가운데서도 로열더치셸은 전혀 독특한 경영전략을 펴고있다.
82년 원유공급의 과잉으로 유가하락의 위기를 맞자 미국의 메이저들은 해외시장에서 철수하거나 사우디아라비아에 더욱 밀착하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로열더치셸사는 그렇지 않았다. 대중동의존도를 더 줄이는 대신 번돈으로 자사소유유전에 투입했으며 9백여개기업군으로 뭉쳐진 로열더치셸제국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그결과 78년부터 82년까지 그룹의 자기자본수익률은 19%를 넘어서 세계최대석유메이저 엑슨을2%나 오히려 앞섰다.
석유메이저만큼 덩치큰 업종도 드물지만 로열더치셸을 능가하는 기업은 엑슨외에는 없다.
83년 매출액 8백5억5천만달러로 세계랭킹2위. 그러나 자본금은 6백97억달러로 엑슨의 6백29억달러를 웃돌고 있다. 로열더치셸의 매출규모는 또다른 석유메이저 텍사코의 4백억달러에비하면 2배, 스탠더드오일 (2백76억달러)의 3배에 가깝다.
오늘날 로열더치셸의 성장은 어쩌면 메이저이면서도 지난70여년의 기업역사속에 항상 원유부족으로 시달려온 경험이 원동력이 됐다고해도 과언은 아니다.
1907년 네덜란드의 오일맨「헨리·리터렁」 과 영국석유상「마커스·새뮤얼」 2인이 설립한 이래로 로열더치셸은 국제석유사업에서 항상 원유부족으로 고민해왔다. 엑슨·모빌·텍사코등 미국계메이저들처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가 밀접하지않아 세계곳곳으로 석유를찾아나서야 했고또 나이지리아·이란등에서 원유공급선을 찾았을때는 언제나 미국메이저들보다 많은 생산비용을 부담해야했다.
그러나 이러한 길을 걷다보니 국제적 석유거래업자로서 숙련도가 완벽해졌다. 같은 『세븐스타즈』(seven stars)중에서도 로열더치셸은 판매부문이 우수한 것으로 이름나있다.
이익의 상당부문을 석유생산보다는 유통·판매부문에서 얻고있다. 이때문에 로열더처셸은 70년대이후 불어닥친 수차례의 오일쇼크속에서도 다른 석유메이저보다 상처를 덜받고 기반을 다질수가 있었다.
로열더치셸의 특징은 다국적기업이면서도 영국과 네덜란드 두나라의 합동기업 (Trans-National Mergers)이라는 독특한 형태에 있다.
산유및 정제업군로 출발한 로열더치와 무역상으로 출발한 셸이 사업규모가 국제적으로 확대되면서 미국 메이저의 공격에 대항하기위해 손을 맞잡게된 것이다. 당시만해도 이런 합동기업이 약간 존재하고 있었으나 현재는 로열더치셸을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로열더치가 60%, 셸이 40%의주식을 소유, 두개의 지주회사의 결합이 80년가까이 지속되고있다.
로열더치셸은 그룹최고의 상임이사회를 정점으로 세계1백여개국에 뻗친 투자회사·조업회사·서비스회사등을 거느리고있고 여기에 다시 지역·사업분야·기능별 지원조직을 갖춰 이들이 9백여개의 각회사에대한 필요한 자문과 정보를 제공하고있다.
로열더치셸의 특징은 무엇보다 분권적 경영조직을 갖고 있다는점이다. 그룹각사가 경영의 주체성을 가지고 자금·기술·개발경쟁을 독자적으로 전개해나간다.
로열더치셸의 실권을 쥔 최고상임이사회는 8인으로 네덜란드측이 5인, 영국측이 3인을 각각 파견하고 있다.
그룹의 주요결정이 이뤄지는 이상임이사회는 75년이래 매주1회씩 열리고있다.
비록 본사는 런던과 헤이그2개로 나뉘어져있지만 자가용전용비행기를 운항, 1시간만에 어느곳에서나 회의에 출석, 거대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처재 로열더치셸그룹의 하루석유생산량은 1백50만배럴로 엑슨에 버금간다. 그동안의 영역확대로 석유·천연가스매장량 부문에선 엑슨을 뒤로 따돌리고있다.
그러나 로열더치셸의 고민은 앞으로의 사업확장을, 그것도 자금의『가장 효율적인 투자』 란 입장에서 어떻게 전개하느냐하는 것이다.
석유메이저란 워낙 덩치가 커 웬만한 투자손해쯤으론 꺼떡하지도 않지만 로열더치셸의 그동안의 경영다각화전략은 별로 성공을 거두지못했다.
70년대 원자력산업에 투자했다가 4억2천만달러를 손해봤고 화학분야에서도 2억달러를 날렸다.
북해와 유럽의 각유전의 보유매장량은 79년이래 14%이상 감소했고 중공대륙붕에서 엑슨과 손잡고 시작한 1억달러 합작탐사도 지지부진하다.
로열더치셸은 원래 동남아에서기반이 강한 석유그룹이지만 석유쇼크이래 드세진 산유국의 입김으로 이런 지배권도 흔들리고있다. 인도네시아가 설립한 하루40만배럴의 정제시설이 가동되고 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석유화학공장이 준공돼 82만5천배럴의 석유가 생산, 동남아로 수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로열더치셸이 셸사의 주식을 추가매입, 미국에의 본격적인 진입을 시작한 이유도 이러한 배경에 원인을 두고있다. 세계적 톱기업의 위치를 지키기위해서는 미국 유전개발경쟁에의 적극 참여가필수적이라고 느끼고 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로열더처셸은 매이저중에서도 미국과같은 거대한 자유시장에 경험이 적다. 주로 유럽·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 기반을 다져왔지만 이 지역들은 생산과 가격등에대한 정부개입이 강해져 점차 자유경쟁시장과는 거리가있다.
미국 셸사는 로열더치셸그룹 자회사중에서도 수익성이 뛰어난곳으로 작년만해도 1백97억달러의 매출에 16억3천만달러의 수익을 기록, 미국기업랭킹 13위를 차지했다.
이밖에도 맥시코만· 대서양의 심해유전탐사를 진행, 거액의 자금을 투하하고있다.
로열더치셸이 앞으로 미국의 셸사를 거점으로 어느정도까지 영역을 확대할지가 주목거리지만 바로 이점이 유럽최대의기업 로열더치셸의 장래를 가름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것은 분명하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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