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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수의도 못 입히고 보내 원통 … 밤마다 자다 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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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조모(31·여)씨는 지난 17일 어머니(54·여)를 잃었다. 조씨는 어머니가 숨진 뒤 잠을 못 이루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억울하고 원통해서 하루 종일 눈물만 난다. 잠이 들어도 자다 깨다 반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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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어머니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으로 사망했다. 42번 환자였다. 어머니는 지난달 19~29일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 7층에 입원했다가 감염됐다. 어머니는 29일 메르스 확진을 받고 서울 중랑구 서울의료원으로 이송됐다. 치료에 들어간 지 19일 만에 어머니는 숨졌다. 조씨는 병원 측의 배려로 숨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볼 수 있었다. 그는 “심폐소생술을 받다가 돌아가셔서 환자복 상의가 다 벗겨진 채였다. 메르스 환자라 염은커녕 수의도 입혀줄 수 없었다. 몸은 이중 비닐백과 나무 관에 아무렇게나 담겨 화장터로 갔다”고 말했다.

 조씨는 이후 우울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 병원에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메르스인 걸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어땠을까 내 잘못인 것만 같아 괴로워요. 엄마 얼굴이라도 한번 쓰다듬어 봤으면 좋았을 텐데….” 조씨는 눈만 감으면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메르스 사태가 길어지면서 조씨처럼 ‘메르스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를 앓는 이들이 늘고 있다. 메르스 사망자의 유가족뿐 아니라 완치자·자가격리자도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메르스에 감염됐다 완치된 주부 A씨는 퇴원 뒤 우울증 약과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그는 “약을 먹어도 5시간을 못 잔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싶어 화가 울컥 치밀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A씨는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동네에 ‘메르스 환자’로 소문이 났다. 퇴원 뒤 마주친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 없는데도 A씨를 피해 다녔다. 그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소문이 날까 봐 하루 종일 마음 졸인다. 학교 선생님께 전화해 ‘아이만은 지켜 달라’고 부탁하다 펑펑 울었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울먹였다. 82명을 감염시킨 14번 환자도 완치돼 22일 퇴원했지만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메르스 환자에게 노출돼 외부와 차단된 채 14일을 버텨야 하는 자가격리자들도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다.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80대 자가격리자 B씨는 하루에도 몇 차례 보건소에 전화를 건다. “열이 나는 것 같다. 나도 메르스에 걸린 것 아니냐”고 불안감을 호소했다. 진단 결과 별다른 증세가 없었다. 보건소에선 B씨에게 “감염된 게 아니니 마음을 편히 가지시라”고 설득했지만 그의 불안증은 가시지 않았다. 계속해서 “ 열이 난다”고 호소해 결국 구급차가 출동했다.

 ◆어떻게 치유할까=메르스로 인한 정신적 상처가 모두 병적인 것은 아니다. 서울대병원 최수희(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시적으로 화가 나거나 분노 조절이 안 되고, 슬프고, 불안한 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생기는 정상적인 반응”이라며 “다만 이런 증상이 오래가거나 화를 내다 못해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든지 본인이 조절할 수 없을 만큼 증상이 심해진다면 문제”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유가족이 ‘내가 그때 그 병원에 가게 만든 거 아닐까’ 하는 식의 비논리적인 자책을 계속하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처를 제때 치유하지 못하면 정신 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인제대상계백병원 이동우(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이들 가운데 10~20%는 심리 치료 등을 받지 않을 경우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정신 질환을 앓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16일부터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함께 메르스 피해자에 대한 심리 치료를 지원하겠다고 지난 16일 발표했다. 하지만 유가족에게만 집중한 데다 대상자 동의를 받아야 지원 안내가 가능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24일 기준 확진자 179명, 자가격리 해제자는 1만2000명을 넘어섰지만 심리 치료 건수는 193건에 그쳤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본인 동의를 받아야 심리 치료 지원 안내를 해줄 수 있는데 대상자 연락처가 개인정보라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스더·김나한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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