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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독자들은 아직도 ‘표절의 진실’을 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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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신준봉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씨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소설가 신경숙씨의 일본 소설 표절 논란이 한 고비를 넘은 듯하다. 열흘이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문학 독자들은, 아니 한국 사회는 참 많은 걸 보고 듣고 느꼈다. 우선 수많은 말들의 ‘향연’이 있었다. 후세에 기록으로 남긴다면 역시 1위 후보는 신씨다. 그는 23일자 언론 인터뷰에서 “표절이라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같은 석연치 않은 해명으로 또 한번 공분을 샀다.

 격동의 1970∼80년대를 헤치며 민주화 운동의 한 축으로 우리 사회의 양심적인 목소리를 자처해온 출판사 창비의 처지도 딱하게 됐다. 위기대처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나 하는 건 둘째 치고, 책 많이 팔아주는 스타작가에게 휘둘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저 좋은 문학작품을 찾아 읽기만 하던 독자들이 ‘문학권력’이 판치는 문단의 어두운 현실에 대한 견문을 넓힌 것이 이번 표절 논란의 소득이라면 소득일까.

 불똥은 동료 작가들에게도 튀었다. 한 중진 소설가가 24일 낮술을 마시다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장편소설을 쓰다 마음이 답답해서 술 한잔 마셨다”고 했다. 사람들이 멀쩡한 작가까지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됐다는 얘기였다.

 좋은 소설은 우선 잘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 성격의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문학성’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을 갖춰야 좋은 소설의 범주에 들 것이다.

 이번 파문 덕에 소설의 상업성과 문학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지금까지 신씨 소설이 두 가지 모두를 갖춘 대표주자 격이었기 때문이다. 문학성이란 무엇일까. 진부한 표현이지만 인간과 세상에 대한 어떤 진실을 담고 있어야 문학성 있는 작품일 것이다. 우리가 신씨 소설에서 단순한 재미를 넘어 감동까지 느꼈던 건 작가가 자신의 양심을 걸고 세상과 싸운 정직한 상처의 흔적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표절은 그런 신뢰를 깨트리는 행위다. 그에 대한 진실을 얼버무리는 듯한 신씨의 태도는 실망감을 더 키웠다. 그런 점에서 신씨의 해명은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힘들겠지만 다시 한번 공개석상에서 충분히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한다. 우리는 잘 읽히고 감동적인 신경숙 소설을 잃고 싶지 않다.

신준봉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