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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정신대 할머니들 미쓰비시 중공업에 항소심도 승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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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는 원고 양금덕에게 1억2000만원을, 원고 이동련에게 1억원을 지급하라."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하자 할머니들은 옅은 미소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법정을 빠져나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 만세"를 함께 외치며 서로를 격려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에 끌려가 강제노역을 한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항소심에서도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광주고법 민사2부(부장 홍동기)는 24일 양금덕(84) 할머니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 등 5명이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미쓰비시가 양금덕·박해옥(85)·김성주(86) 할머니 등 당사자 3명에게는 1억2000만원씩을, 다른 당사자인 이동련(85) 할머니에게는 1억원을, 숨진 부인과 여동생을 대신해 소송을 낸 김중곤(91) 할아버지에게는 1억208만원을 위자료로 배상하도록 했다. 1심은 8000만~1억50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양 할머니 등은 판결 직후 광주지방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줄 알았는데 감개무량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떨리는 목소리였다.

양 할머니는 "다시는 대한민국 국민이 이런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옥 할머니는 "일본에서 돌아올 때 약한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비참한지 느꼈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양 할머니 등은 1944년 13~14세의 나이에 "돈도 주고 상급학교에 보내주겠다"는 일본인 교장과 헌병의 말에 속아 미쓰미시중공업의 일본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간 뒤 페인트칠 등 중노동을 하고도 임금을 받지 못했다. 진학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1999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등 국내외 시민사회단체의 지원으로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했다. 그러자 2012년 10월 국내에서 소장을 냈다.

재판부는 미쓰비시 측 주장과 달리 한국에 국제재판 관할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한·일청구권협정을 들어 배상 책임이 없다는 미쓰비시 측 주장에 대해서도 "개인의 청구권까지 포함된 것이 아니고,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을 포기할 수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어 "일본 정부의 식민통치와 식민지 교육 상황에서 13~14세에 불과한 어린 학생들이 강제로 동원돼 열악한 조건에서 위험한 노동을 강요받았으며 자유를 침해받고 인권이 유린됐다"며 미쓰비시 측 책임을 인정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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