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내옥<한양교수·국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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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본에 사는 일본 사람이 송학선의사 사건 또는 금호문사건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봐 달라고 나에게 부탁하였다.
들어본 적이 있는 의사·애국자이름이지만 잘 알지 못하여 그때부터 부랴부랴 알아보니, 송의사는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황제가 승하하실 때, 그러니까 1926년 4윌28일대낮에 장례식장인 창덕궁의 옆문인 금호문앞에서 일본 총독인 재등실을 칼로 찔러 죽이려다가 뜻밖에 총독은 조문장소에 참석하지 아니하였기에 다른 일본 사람을 죽이고 다치게한 의거를 행한 애국자였다.
송의사는 l893년에 태어나 나이 30이 넘어서 국가를 건지려는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안중근의사를 사모한 나머지 총독을 게거하려다 실패하여 l927년에 사형을 당하였지만 후세에 그의 애국활동을 국가에서 인정하여 원호처에 건국공로훈장 단장64호로등록된 분이다.
그러면 일본사람이 어찌하여 이 송의사사건을 알고자할까?
송의사를 연구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분이 총독으로 잘못알고 찌른 총독의친구 좌등호매랑이라는 당시 유지의 행적을 알고자 하여서 나에게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일본사람은 당연히 일본사람을 알고자하고 우리나라사람은 당연히 우리나라 애국자를 알고자한다.
이것은 정한 이치다.
그런데 나는 이 정한 이지에 합당한지식인인가?
일본에서 편지를 받기전엔 송의사에 대하여 거의 백지와 같았으니, 서재를 뒤지니까 송의사의 기록이 한때애국자 자료수집을 해둔 덕분에 있기는 하였으나 이것을 검토한 적이 이전에 있었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그래서 송의사전기를 쓰려고 여기 저기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바로 여의도 국회의사당앞 광복회관에 있는 원호처에 가서 알아보니 5만명의 애국자조사카드가 있고 애국자 7천명의 가족에게 원호지원을 하고 있음을 알았지만 정작 송의사는 1962년에 국가에서 지정한후에 원호금이 나가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가족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송의사의 가족은 어디 있는가?
송씨 대종보를 찾고 문중을 방문하며, 호적을 추적하고, 당시 신문을 다 찾아보며 역사학자의 도움을 얻으면 잊혀진 애국자이야기 하나를 세상에 알릴것만 같다.
앞으로 그렇게 할생각이지만 그보다 송의사 가족이 나타나서 문중과 온나라에 빛난 조상을 드러내고 국군에 있는 원호금을 타고, 이와같이 묻혀 진술한 다른 애국자 발굴과 연구와 전기출판의 자극이 되게 한다면 제일 좋겠는데 송학선 (송학선 또는 학선), 그의 아버지는 송성근, 본적은 서대문구천연동128, 의거당시는 아현동27번지에 살던 송학선의사의 가족은 어디있는가?
일본을 알고 친하고자하며 이해하고자 한다면 한편에서는 일본과 싸운 조상의 행적도 비례해서 알아야 국민의 균형있는 처사가 아닐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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