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저리고 식은 땀에 기억 가물 … 만성피로 못 잡으면 면역력 ‘흐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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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객원 의학전문기자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직장인 이모(39·여)씨는 봄부터 있던 춘곤증이 여름이 다가와도 가시지 않는 느낌이다. 오후만 되면 절로 졸음이 쏟아져 기지개를 켜보고 커피를 마셔봐도 별 소용이 없다. 주말에 푹 쉬어도 피로감이 가시지 않는다. 날이 더워지자 더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5년 동안 (2010~2014년)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를 분석한 결과 30~50대 환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여성은 6만956명으로 남성 3만8570명에 비해 58% 가 더 많았다. 특히 60대 이상 장년층과 20대 젊은층에서도 여성 환자의 비율이 남성에 비해 각각 71.5%, 72.9%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이 남성보다 만성피로증후군 비율이 높은 원인은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호르몬이나 부신, 갑상선 이상, 자궁 질환 등의 이유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특히 직장 여성은 직장일과 육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아 남성보다 만성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20대 여성은 심한 다이어트나 불규칙한 식사로 비타민과 미네랄 결핍 등 영양상태 불균형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봄 지나서도 춘곤증 지속되면 이상 신호

여성들 못지않게 남성들의 만성피로도 심각하다. 무역회사에서 영업을 맡고 있는 김모(45·남)씨는 해외출장이 잦다. 한 달에 절반가량은 해외에서 머무는 데다 근무시간을 넘겨 일을 하기 일쑤였다. 지난해부터 부쩍 피곤이 풀리지 않던 김씨는 최근 들어 만사가 귀찮고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지난달에는 독감에 걸린 것처럼 온몸이 아프더니 소화도 안 되고 두통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 병이라도 걸린 건가 싶어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아봤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얘기만 들었다. 김씨는 가정의학과에서 만성피로증후군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 중이다.

피로는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잠깐의 휴식으로 회복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피로가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취했는데도 없어지지 않고 일상생활에 지장을 준다면 만성피로증후군을 의심한다. 이때 피로를 유발할 만한 다른 질환이 없는지 먼저 살펴봐야 한다. 주로 우울증·불안증이나 빈혈·간질환·당뇨병·갑상선질환·신부전증·암 등 질환이 있어도 피로가 나타날 수 있다.

만성피로증후군은 초기에는 단순히 피로가 쌓인 것 같은 증상을 보이지만, 장기화되면 몸의 호르몬 균형을 깨뜨리고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집중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없고 기억력에도 문제가 생기며, 식은땀이 나고 손발이 저린다. 온몸에 통증이 있거나 어지럽고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사이언스 어드밴스(Science Advances)’ 2월호에 실린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의 면역체계 변화를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만성피로증후군 환자(발병 후 3년 이내)는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사이토카인 혈중 수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이토카인은 신체의 방어체계를 제어하고 자극하는 신호물질로 사용되는 당단백질이다.

대개 감염에 대한 면역반응으로 사이토카인 수치가 증가하게 된다. 이 논문은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의 경우 면역체계 이상으로 감염 증상이 사라진 후에도 면역반응이 지속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짠 음식·가공식품은 면역력의 적
만성피로증후군은 원인이 단순하지 않고 장기화되면 치료가 쉽지 않다. 특히 우울증과 만성피로를 혼동하기 쉬운데 자가 치료보다는 제대로 검사를 받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우울감이나 무력감을 개선하기 위한 약물치료(항우울제, 부신피질 호르몬제 등)나 인지행동 치료가 이뤄진다. 하지만 약물치료만으로는 증상이 개선되기 어렵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별다른 원인 질환이 없다면 금연·절주하고,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충분한 수면 등 생활습관을 개선해 면역력을 높이는 노력이 우선이다.

만성피로증후군이 생기면 몸의 불균형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에 면역체계의 균형부터 찾아야 한다. 면역체계는 질병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는 방어기전으로 자율신경계와 내분비계가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유지된다. 면역력을 높이려면 세균, 바이러스, 독소, 기생충, 알레르기 유발물질, 발암물질 등 병원체를 잘 막을 수 있는 에너지를 길러야 한다.

현대사회 식생활은 열량이 넘쳐나도 비타민이나 각종 미네랄, 효소 성분이 부족한 것이 문제다. 에너지 대사 작용을 돕고 백혈구 기능을 향상시키려면 비타민 A·B·C·E, 셀레늄, L-카르니틴, 코엔자임 Q, 아연, 마그네슘 등의 성분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담색 채소(마늘·양파 등), 녹황색 채소(당근·브로콜리 등), 버섯, 소고기, 돼지고기, 어패류 등이 도움이 된다. 각종 화학첨가물이 든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은 비타민과 무기질의 흡수를 막아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짜게 먹는 습관도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면역력에는 도움이 안 된다. 트랜스지방은 몸속에 들어가면 배출되지 않고 생체기능 조절물질의 작용을 방해해 면역력을 떨어뜨린다.

면역력을 높이려면 운동도 빠질 수 없다. 운동이 부족하면 세포의 활동력이 떨어져 비만이 되고 면역기능에도 해가 된다. 빠르게 걷기, 수영, 조깅, 태극권 같은 유산소 운동이 면역체계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요가, 명상, 스트레칭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면역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김경수 객원 의학전문기자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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