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한통의 투서가 정·재계에 "만파"|부정 축재·탈세드러나 함께 "망신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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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또 한해가 저문다. 어수선하면서도 사건·사고로 얼룩졌던 한해였다.
사건을 쫓는 기자들도 그래서 바쁘게 된 한해였다.
한해가 가면 그뿐, 현장은 침묵하고 사건들은 뇌리에서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그 자리, 그 주역들이 남긴 교훈을 우리는 잊을수가 없다. 한해를 장식했던 사건·사고의 현장과 주역들의「그후」를 추적해 본다.
한통의 투서가 몰아온 회오리가 제5공화국 정계의 개편으로까지 확대됐다.
동향의 라이벌 문형태씨와 정래혁씨. 반평생의 암투 끝에 두사람 모두 정치무대에서 퇴장하는 불명예로 파장을 만났으나 「문형태투서사건」으로 터진 사건은 「정내혁치부사건」 으로 결말나 많은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일파가 만파를 몰아와 사건의 여파는 정치·경제분야의 여러사람에게 미쳤다.
이제는 두 주인공 모두 무대뒤에서 좌절과 회한속에 관망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투서사건후 국세청이 조사, 발표한 정씨의 재산은 1백6억7천3백2만원. 국회의원 세비를 한푼도 쓰지않고 꼬박 모아도 5백90년이 걸리는 액수다.
정씨는 이 재산의 절반쯤인 54억8천2백만원 상당의 부동산을 국가에 헌납하면서 국세청이 추징한 탈루세액 3천4백여만원을 그속에 포함시켰다.
정씨가 기부채납형식으로 헌납한 이 부동산은 9월11일자로 「소유자 국가, 관리청 재무부」로 소유권이 이전등기됐다.
재무부는 지난5일 서울 역삼·삼성·논현동일대 노른자위땅 7필지를 공매에 붙여 이중 역삼동682의7 대지1백40평을 4억3천8백만원(당시 국세청 감정가 3억5천만원)에 팔았다. 매입자는 창일산업(대표 이학수) .
인근 부동산업자들은 서울 역삼동682일대 8필지중 헌납하지 않은 부분이 헌납한 부분보다『더욱 노른자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날 팔린 대지 바로옆에 있는 역삼동682의8 3층건물(대지 2백40평, 건평 4백83평, 국세청 감정가 10억8천여만원)은 김모씨의 사법서사 사무실만 2층 한구석에 남아있을뿐 사건직후부터 텅 비어있다.
김씨는 월세45만원(보증금 6백만원)을 「헌납」이후에도 정씨측에 매달 내왔다고 했다. 다른 입주자들은 정씨측으로부터 임대보증금을 받아 나갔거나 인근의 헌납 안된 정씨소유 건물로 욺져갔다.
헌납재산중 전남광주시북동59 정덕유치원은 내년초 이사회(현이사장 주숙)에서 법인헌납결의를 거쳐 설립자를 정씨에서 광주시로 변경, 공립유치원으로 다시 문을 연다.
정씨는 투서사건전에 살던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 주암리 1의23 고속도로변 자택에서 부인과 운전사 가족, 국회의장 시절부터의 비서 정영만씨 내외와 함께 살고있다.
사건이후 스케일링을 위해 두차례 치과에 다녀왔을 뿐 일체 문밖출입을 하지 않고 주로 독서만을 하며 가족들에게조차 정치얘긴 꺼내지도 않고 있다고 비서 정씨가 전했다.
공직에 있을때는 방문객이 그렇게도 많았으나 요즘엔 정씨의 자녀와 예전의 몇몇 부하들만 다녀갔을뿐 외부인사의 출입도 거의 없다.
투서를 한 문형태씨 역시 정치무대 복귀가 좌절된 외에 재산상의 타격도 컸다는 후문.
국세청 조사결과 밝혀진 문씨 재산은 60억원규모. 양도세등 8천만원을 탈루한 사실도 밝혀져 추징당했다.
뿐만아니라 사위 윤석조씨가 대표로 있는 서주우유도 같은 시기 세무조사를 받고 18억원의 달세사실이 적발돼 큰 타격을 입었다.
국세청은 서주우유에 대한 세무조사가 문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혔지만 그뒤 『장인때문에』라는 사위의 원망과 함께 장인과 사위의 사이가 서먹해졌다는 주변의 얘기들이다.
윤씨의 형 윤석민씨가 최근 국민당 부총재격에서의 사임, 정치에서 손을 뗀것도 이 사건과 결코 무관하지만은 않을것이라고 정계와 재계에서는 추측이 만발하다.
문씨는. 문제의 투서를 작성하며 사무실로 이용했던 을지로 프레지던튼호텔 1902호실에서 완전 철수, 가끔 여행을 하지만 외부인사와는 거의 접촉을 끊고 있다.
문씨는 지난5일 체신부에서 있은 역대장관 모임에 참석했지만 이자리에서도 투서·정치얘긴 일체 않고 체신사업에 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씨의 투서률 작성해준 윤만덕씨(48·K대강사)는 그 뒤 강의를 중단하고 요즘은 번역일을 하고있다.
사건직후 철거시비가 있었던 정씨와 문씨의 고향 학교 마당의 두사람 공적비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으며 고향에 얼굴을 내밀지못하고있는 점은 두사람 모두의 공통점.
문씨는 지난달 25일 화순에서 열린 종진회에 회비8천원과 안부편지만을 보냈을 뿐이다. <박근성·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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