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평야에 "사금노다지"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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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제=모보일 기자】김제평야에 때 아니게 금노다지를 캐는 포크레인등 각종 중장비의 기계소리가 요란하다.
전북 김제군 금구면 호남고속도로 전주인터체인지에서 광주쪽으로 10㎞쯤 떨어진 낙성·산동·월전·용지등 4개부락 10만여평의 논 여기저기에 커다란 웅덩이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는 가운데 퍼낸 흙더미가 산을 이루고있다.
「사업장」이라 불리는 구덩이는 얕게는 4∼5m, 깊게는 10∼15m씩, 폭은 20∼30m. 이곳에 있는 22개의 사업장에 약50명의 채금업자들과 각종기계 60여대, 작업인부등 2백여명이 달라붙어 마치 서부영화에서 보듯 금캐기에 기세를 올리고 있다.『5m정도 흙을 걷어내면 푸르스름하거나 붉은 빛깔을 띤 감토층이 나오고 이 흙을 선별기에 넣으면 사금이 나오지요.』
6천7백평의 논을 4개월동안 빌어쓰기로하고 7백80만원을 임대료로 주었다는 최모씨(36· 김제군)는『개답허가를 얻어 1차로 2백평을 잡아 지난11월 한달동안 포크레인 2대, 임대료 1천만원, 인건비 4백만원등 1천4백만원을 들여 사금채취작업을 벌였으나 아직은 한톨의 사금도 캐내지 못했다』고 크게 실망한 표정.
『2백평을 더 채굴해 본다음 계속할 것인지를 결정짓겠다』면서도 일확천금의 꿈을 떨구지 못했다.
추수가 끝난 김제벌의 때아닌 금캐기 소동은 지난해 40대후반의 「배씨」라는 남자가 포크레인 1대를 갖고와 이곳에서 2억여원어치의 금을 캐 서울로 갔다는 소문이 나고부터.
금구는 금의 개천(구)이라는 지명이 말해주듯 예부터 금이 많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 촌노들은 1930년대 일본이 산금정책을 펼 때 일본의 미쓰비시(삼능)회사가 이일대의 금매장량조사를 한뒤 금을 캐내 화차로 실어갔다고 전하며 『그당시 깡그리 훑어가 이제는 있어봤자 사금정도일텐데 사람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 좋은 장비때문에 일하기가 수월해진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일제때의 노다지 꿈 때문인지 해마다 추수가 끝난뒤면 2∼3명의 채금업자가 남의 논을 빌어 작업을 벌여왔는데 배씨의 일확천금이후 허모씨(46·전주시)가 또 한차례의 금을 캐 지난 10월중순부터 전국 각지에서 50명의 채금업자들이 떼지어 몰렸다는 것.
15년간 채금공사장 감독으로 일해온 송모씨(52)는『땅 한평에서 7푼정도의 사금이 나오면 비용을 떨고도 80만원가량 남고, 5푼이면 30만원가량 남지만 3푼이하면 30만원이상 손해를 본다』면서『사금이 발견돼 봤자 옛날처럼 노다지를 캐는 경우가 없고 오히려 나오면 나오는대로, 나오지 않으면 나오지않는대로 사금을 캐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결딴이 나기 일쑤』 라고 말했다.
지난해 1천6백여만원을 벌어 올해도 그같은 기대를 안고 채금을 시작했다가 매일 1백원씩「손해를 보고있다는 장모씨(44·금구면)는『계속 돈을 퍼붓다가도 한번 금맥을 잡으면 모든 경비를 떨고도 목돈을 쥘수 있는게 금캐는 재미』라며 노다지의 꿈을 굽히지 않고있다.
장씨는 『이통에 재미를 보는 것은 논 임자뿐』이라했다. 『이곳 논은 모두가 사질이어서 농사가 잘 안되는데 사금을 캔다고 온통 논을 뒤집어 놓으니 돈 안들이고 객토사업을 하는 셈인데다 2백평당 쌀 4가마를 임대료로 받으니 앉아서 2모작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광업진흥공사 광상조사부 이정섭씨(사금 담당) =예부터 우리나라 4대 사금광상으로 꼽히는 곳이 전북김제지역과 충남성환·홍성·공주지역이다.
사금은 암석속에 들어 있던 금이 오랜세월을 지나는 동안 비바람등에 씻겨 강물을 따라 흘러내려가다 모래속에 스며들어 층을 이룬 것이다.
우리나라 지형이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은 특징 때문에 서해안쪽에는 사금광이 많다.
인천앞바다에서도 사금이 채취되는 것이 그런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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