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공복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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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앙일보사가 음지에서 묵묵히 일해온 청백봉사상 수상자들을 해마다 표창하고 조촐한 잔치를 베풀어 주는것는 이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보람과 영광을 안겨주자는데만 그 뜻이 있는것이 아니다. 공직사회에 보다 참다운 공무원상을 심어주고 수상자들을 본받는 또 다른 「숨은 일꾼」들을 더많아 배출하자는데 더 큰뜻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국가행정력이 국민생활에 직·간접으로 미치는 영향의 폭이 큰 나라도 드물것이다.
더구나 지속적인 발전과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국가행정기관에 몸담고 있는 공무원들의 자세와 노력이 어떠해야 한다는것은 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존민비의 오랜전통 탓인지 일부 공무원의 불친절과 군임하는 자세가 지탄의 대상이 되고 관·민의 화합을 깨뜨리는 일이 없지 않았다.
어떤 공무원은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우월감을 갖거나 상급자에게 지나치게 아첨하고 과잉충성으로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흐려놓는일도 적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일부 공무원중에는 직권을 이용해 부정을 저질러 이도를 어지럽히고 전체 공무원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사례도 많았다.
국가와 사회가 건강하고 항구적인 향상을 거듭하기 위해서는 관과 민이 공동체 의식을 지녀야한다.
이같은 공동체 의식은 저절로 우러나오는것이 아니라 행정기관이 정당성과 윤리성을 가질때 국민이 국가에 대한 귀속감이 생기고 엄숙한 인정을 부여하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뜻에서 공무원의 헌신적인 봉사와 희생이 요구되고 윤리성이 강조되는 것이며 이번에 표창받은 청백봉사상 수상자들이 더없이 돋보이는 것이다.
수상자 가운데는 모두가 꺼리는 객혈 환자만 10년가까이 헌신적으로 돌보면서 목욕도 시켜주고 피를 받아내 약을 주는 갸륵한 정성의 여성공무원도 있다. 한국의 「나이팅게일」이라는 이 공무원은 근무 여건이 훨씬 좋은 다른 병원으로 발령을 받기도 했으나 한사코 원대 복귀를 자원, 자신의 모든것을 바치고 있다.
또 어떤 수상자는 쥐꼬리만한 자신의 봉급을 털어 불우한 이웃을 도우면서도 이같은 미담이 드러날까 두러워 애써 숨겨왔다. 또 다른 수상자는 자신이 수상후보자가 된것조차 모르고 지내다 스스로 수상자격이 없다고 우기면서 표창받기를 완강히 거부한 「숨은 봉사자」도 있었다. 이들은 공무원 사회에 이른바 「별난인생」들이며 누가 뭐라하든 정직과 근면, 봉사로 일관해온 참다운 공복들이다. 조선조 초기의 황희정승과 맹사성정승이 그토록 오래도록 정승 자리에 머물러있었음에도 청렴과 염직으로 조선조 5백년간 이도의 사표로 숭앙을 받아왔다.
때로는 탐관들의 흙탕질로 조선조 이도가 먹들기도 했으나 어느왕조 못지않게 이도확립이 굳건했던 것은 이 두사람의 청백 정신이 면면히 흘러 내려왔기 때문이다.
제5공화국은 출범초부터 깨끗한 사회를 표방하고 있거니와 이들 수상자들에게 1계급특진 부여나 위로의 잔치로 그치지 말고 소중한 숨은 공복의 정신을 더욱 북돋우고 확산시키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될 것이다.
재주나 요령이 과대평가되는 공무원사회의 풍조를 없애고 그늘에서 묵묵히 일하는 참된 공무원이 우대받고 고급공직자들의 검소한 생활의 기풍이 확립되도록 다함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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