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도덕율」인 「부자도리」팽개친 패륜응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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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너는 나의 귀여운 자식임에 틀림없다. 아비가 잘못이 있으면 네가 용서하여라. 네가 잘못이 있으면 이아비가 용서하겠다. 우리 서로 가장 좋은 집안을 만들어 가자. 조상께서 보시고 계시며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현실을 지켜보고 있다. 무엇보다 천륜을 지키자.』
거화의 김창원회장(67)이 구속되기 직전 한아들에게 전해 주려고 쓴 편지내용의 일부다.
그러나 김회장은 편지를 전해주지 못한재 아들측의 투서에 의해 지난 11월3일 검찰에 구속됐다.
「천륜」을 강조하는 아버지가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는」인륜의 막바지 단계-패륜에 의해 구속된 것이다.
3남 준식씨(36)에 대한검찰의 구속은 바로 인간도리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이러한 패륜행위를 응징함으로써 사회기강을 바로 잡으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되고 있다.
김회장이 4명의 아들 중 가장 총애한 3남 준식씨 사이에 틈이 벌어지게 된 것은 준식씨가 회사돈을 빼돌리면서 부터.
김회장은 평소 준식씨가 거화계열사인 코리아 스파이서를 잘 운영해나가는 점에 대해 신뢰감을 갖고 주위사람들에게 자랑까지 하곤 했다는것.
그러나 검찰조사 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준식씨는 지난 6월부터 회사운영보다는 회사돈으로 호텔을 구입하는등 자기 몫 챙기기에 더 급급했던 것.
김회장이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지난 9월초 스파이서의 미국측 주주인 다나사로부터 해명요구와 항의를 받고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다나사측은 준식씨가 호텔구입 이외에도 부평·인천등지에 많은 부동산을 매입했으며 호텔종업원의 급료를 스파이서에서 지급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김회장은 이같은 항의에 해명을 듣기위해 여러차례 아들을 불렀으나 준식씨는 아버지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다나본사의 국제담당 사장 「그래파」씨가 미국에서 내한 「스파이서 사무실에서 회의를 가졌으며 「그래파」씨와 「패스코」씨(부사장)등 미국임원2명이 있는 자리에서 김회장은 아들 준식씨를 문제발생 이후 처음 만났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준식씨의 호텔구입등에 관한 해명요구로 시작됐다.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챈 김회장이 아들에게 우선 사과토록 종용하자 준식씨는 아버지를 한참 노려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 이때가 9월 중순.
주위사람들도 아버지에게 사과할 것을 종용했으나 준식씨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가 회사를 팔아먹으려 한다』는 등 종업원들을 선동하고 다녔다.
다나사측의 요구도 있어 김회장은 준씨씨를 지난 10월10일 주주총회에서 해임했으며 준식씨는 이에반발 심복부하와 종업원들을 시켜 신임사장 이낙선씨등을 회사에 들어오지 못하게 실력으로 막았다.
이씨의 취임을 막기 위해 종업원을 시켜 할복자살 시늉까지 했다.
이들은 회장인 김씨의 출입도 막고 『×××회사를 팔아먹느냐』『저놈의 차 불질러 버려라』는 등 아버지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까지 퍼부었다.
밀고 당기는 싸움이 20여일간 계속되던 끝에 김회장은 익명의 투서에 의해 검찰에 구속됐다.
김회장은 구속되기전 자신의 과거 비위를 알고있는 3∼4명의 측근들이 떠오르고 곧 그들중 1명이 아들들과 친밀한 사실이 생각나 아들이 투서했다는 심증을 굳혔다고 검찰수사관에게 털어놓았다.
한 측근에 따르면 김회장은 최근 아들들에게 재산을 공평히 분배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아들들은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각각 화사돈을 챙겨 달아나거나 아버지 곁을 떠나버렸다는것.
재산분배를 둘러싼 아들들의 암투는 최근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지난 9월 하순 뉴관악골프장에서 김회장부부와 우연히 만난 한 아들은 부모에게 인사는 커녕 아버지의 운전기사 김모씨(43)를 불러 『××들 며칠 안있어 검찰에 잡아넣거나 총으로 쏴 죽여버리겠다. 꼭 전해줘라』며 욕설을 퍼부었다는것. 김회장은 그후 얼마안돼 검찰에 구속됐었다.
거화를 자기에게 넘기라고 요구해온 이 아들은 아버지가 구속된 뒤에도 『거화인수』를 고집하며 일부 거화간부들에게 『너희들 오래 붙어있지 못한다』는 등 협박을 하기도 했다는것.
김화장이 수갑을 찬 채 검사앞에서 수사를 받을때 투서를 한 혐의로 참고인 형식으로 조사를 받으러 나온 이아들은 아버지의 초췌한 모습에 한마디 위로의 말도 없이 『아버지 이럴수가 있읍니까. 오해하지 마십시오』라며 불손한 언사로 고함을 지르더라고 한 수사관은 전했다.
김회장이 구속되자 검찰엔 「패륜아 편을 들어 아버지를 구속한 것은 잘못」이라는 여론이 빗발쳤고 김씨측근에서 구명진정서가 각계로 전달되면서 고위층까지 큰 관심을 가졌다는것.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아버지를 고발하는 행위는 인륜의 밑바탕을 파괴하는 중대한 사항』이라며 『이 같은 패륜에 대해선 앞으로도 업벌로 응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허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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