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여로의 첫걸음"…미·소외상회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2일에 발표된 미소 외상회담 (1월7, 8일)에 대해 미국언론들이 보이고 있는 첫반응은 「조심스러운 낙관」으로 표현할수있다.
낙관론은 지난1년간의 미소관계를 특징지어온 비관적 전망을 척도로 할때 예비회담의 성격을 띠기는 했어도 의제를 갖춘 정식외상회담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중요한 돌파구라는 평가에서 나온다.
작년9월 KAL기 격추사건을 계기로 더욱 냉각되었던 양국관계는 11월과 12월 소련이 중거리 핵무기협상(INF)과 전략핵무기제한협상(START)에서 퇴장함으로써 쿠바 미사일위기 이래 최악의 상태에 빠졌었다.
거기다가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한 「레이건」미대통령의 연설과 고「안드로포프」 소수상의 대미비난연설은 서로간의 임씨름이 체제비난의 차원을 넘어서 인신공격으로까지 확대되는듯한 험악한 분위기를 자아냈었다. 소련의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불참도 「레이건」의 재선에 들러리를 설수없다는 소련측의 의도를 나타낸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 냉각된 관계로 볼 때 외상회담이 마련된 것은 양국관계의 앞날을 낙관할만한 비중을 갖는다는 풀이다.
그러나 같은 비중으로 그러한 낙관론에는 「조심스러운」이란 형용사가 붙어있다.
그 이유는 냉각관계속에 쌓여온 실질문제에 관해 쌍방이 어느 정도의 양해도 없이 회담개최에만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선 의제에 이견이 있다. 소련은 지금까지 우주무기제한 문제만 따로 떼어 협상하자고 주장해 왔다. 전략핵무기와 중거리 핵무기는 지난해부터 미국이 서유럽에 배치하기 시작한 퍼싱Ⅱ 및 크루즈 미사일등 중거리핵무기를 철수한 후에라야 협상에 응하겠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미국은 지난 9월 「레이건」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일괄 협상안 (일명 우산안)을 제시한 이래 중·장거리 핵무기, 우주무기, 화학무기, 신뢰조성조치 및 유럽의 지상병력까지를 포함한 전면 군축안건을 의제로 삼아야 된다고 맞서 왔다.
미국측은 이번 외상회담을 발표하면서 의제가 전략 핵무기·중거리핵무기 및 우주무기등 3분야를 골자로 할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전면군측 안건을 약간 줄여 소련의 체면을 살려준듯한 인상을 주고있다.
소련측에서는 이번 합의의 열쇠가 된 지난16일자 「체르넨코」의 서한에서 종래 그들이 주장해온 선미사일 철수, 후군축협상과 우주무기협상이 시작되기전에 미국은 인공위성요격실험을 중지하라는 두 선행조건을 제시하지 않고있다.
그러나 이 서한에 언급이 없다고 해서 소련측이 선행조건을 철회했다고 단언할 근거가 전혀 없다. 소련이 의제를 토의하는 과정에서 다시 선행조건을 제기할 경우 외상회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 논평가들의 견해다.
그와같은 초보적 단계를 극복한 후에도 핵협상이란 그 성격상 극적인 진전을 보기는 어렵다는 것을 과거의 체험이 말해 준다.
세계를 제패할 군사력의 핵심요소인 핵무기를 서로 다른 각도에서 평가하면서 서로 자기편의 우위를 손상함이 없이 쌍방의 핵력을 줄이는 작업이 단시일에 진전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레이건」대통령이 말한 『긴 여정의 첫걸음』이란말은 적절하다.
현재 미국행정부 안에서도 국무성과 국방성간에 이견이 있다. 국방성에는 이 시기에 미국의 핵전력을 제한하는 협정을 반대하는 세력이 완강히 버티고 있고 국무성에는 정치적 이유로 핵제한 협상을 강력히 추진해야된다고 주장하는 파가 버티고 있다. 「레이건」대통령은 그래서 곧 양자의 입장을 조화시키고 대소 협상을 주도할 군축 전담관을 임명할 예정이다.
당장의 전망으로는 이번 외상회담이 핵협상에서 구체적성과를 가져오리라는 기대보다는 이 회담을 계기로 그동안 냉각되었던 미소관계가 호전되어 국제 분위기가 보다 화해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리라는 기대가 큰 것 같다.
미소관계의 호전은 남북관계를 도모하고 있는 한반도에도 상서로운 영향을 미칠것이 확실하다. 외상회담과 함께 미소간에 진행되고 있는 문화협정·통상협정등을 위한 논의는 사실상 KAL기사건의 후유증에 종지부를 찍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장두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