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 광장] 중앙·지방 두 날개 필요한 한국 외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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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1호 30면

나는 중앙에서 35년을 일했다. 언론과 국회에서였다. 그러다 지난해 7월부터 전남에 살고 있다. 내가 지방에 생소한 처지는 아니다. 시골에서 자랐고, 지방 국회의원으로 꽤 길게 일했으니까.

그런데도 지방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적지 않다. 된장에 찍은 햇양파나 햇감자를 넣은 병어조림에 걸치는 찬 막걸리, 빗소리 사이로 개구리울음을 들으며 잠드는 밤···. 지방의 삶이 주는 이런 일상의 행복을 말하자는 게 아니다.

언론과 국회는 국가적 사안을 비교적 많이 다루는 곳이다. 그런 데서 35년을 일한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나의 그런 특수한 사정 때문일까. 지방이 국가적 문제로부터 떨어져 있는 섬처럼 느껴지곤 한다.

통일·안보·외교 같은 문제가 그것이다. 이런 문제들은 지방에서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한다. 지자체에 담당조직도, 예산도 없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먹고살기에 바쁘고, 지방은 경제살리기에만 매달려도 모자라니까. 전남만 이러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 회의에서 내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어떤 장관은 “서울만 벗어나면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안보는 조금 나은 편이다. 통합방위회의 같은 협의체와 전국을 망라하는 여러 행동체계가 가동되니까. 그러나 통일이나 외교는 다르다. 지방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느낀다. 중앙도 지방이 나서면 안 되는 일처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옳지 않다. 국가적 문제에는 국민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 중앙정부가 전담한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니다. 안보대국, 외교 강국은 예외 없이 국민의 관심과 동참이 강하다. 나무가 클수록 뿌리가 튼튼한 법이다. 국민을 ‘풀뿌리’라고 부르는 것은 세계 공통이다.

지방주민들이 전문가처럼 되자는 게 아니다. 그러나 지방주민들도 할 일이 있다. 주변의 중국 동포나 탈북자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도 그중 하나다. 우리 사회에는 수십만 명의 중국 동포들이 와 있다. 탈북자도 일반의 생각보다 많다. 그들은 중국이나 북한의 가족들과 여러 방식으로 연락하며 지낸다. 휴대전화가 닿는 범위도 생각보다 넓다. 그들이 접하는 우리 사회의 여러 면모는 실시간으로 가족들에게 전달된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것은 지방주민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영향 받는다. 그것은 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도,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올해 시무식에서 ‘땅끝 협력’ 구상을 밝혔다. 한반도 남북의 땅끝, 전남과 함경북도가 협력하자는 것이다. 세 가지 원칙을 곁들였다. 중앙정부와 협의하며 추진한다, 인도적 사업으로 시작한다,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상호협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남에서 많이 나는 미역과 이유식 재료를 함북의 산모와 유아들에게 보내고 싶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당연히 중앙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우여곡절이 생기고 ‘가다 서다’를 반복할 것이다. 그래도 일관되게 추진하려 한다. 대북관계는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지난해 7월 이후 중국을 세 차례, 일본을 두 차례 방문했다. 중국방문 가운데는 북한에 관해 듣기 위해 연변에 간 것도 포함된다. 전남과 서울에서도 중국과 일본의 고위인사들을 만났다. 전남과 특별한 협력관계에 있는 미국 메릴랜드 주지사 내외도 서울에서 만났다. 또 미국과 러시아도 방문하려 한다. 유럽에는 투자협약과 협동조합 협력을 위해 다녀왔다.

중앙정부를 제치고 뭘 해보겠다는 게 아니다. 외교에서도 지방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방 차원의 협력을 확대하고 주민교류를 넓히면 ‘풀뿌리’ 외교역량이 그만큼 커진다. 그것은 결국 국가의 외교역량을 뒷받침한다. 투자유치 같은 일을 지방이 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때로는 중앙정부가 놓치고 있는 것을 지방이 보완할 수도 있다. 나는 중앙정부의 외교가 균형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나름대로 그것을 보충하고 싶다. 균형은 외교의 생명이다. 균형외교는 한국의 숙명이다.

지방의 분수는 지키겠지만, 지방의 역할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방이라고 해서 외면해도 좋은 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낙연 1952년 전남 영광 출생.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 도쿄특파원·논설위원·국제부장 등으로 일했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계에 진출, 제16대~19대 국회의원으로 농림수산식품위원장과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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