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 리포트] 바나나값 3000원에 농부 몫 100원 공정무역의 필요성 느꼈지요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공정무역 일일수업이 서울 북서울중학교에서 진행됐다. 수업을 진행한 이정화 아름다운커피 간사(왼쪽)와 1학년 2반 학생들.

잠깐 상상해 봅시다. 여러분은 ‘바나나 키우기’라는 컴퓨터 게임 중입니다. 열심히 키운 바나나를 팔아서 부자가 되는 것이 목표죠.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바나나 한 송이를 팔면 100원을 버는데, 키우는데는 300원이 듭니다. 팔수록 손해입니다. 또 내가 100원에 판 바나나를 만약 다시 구입하려면 이번엔 무려 3000원을 내야 합니다. 이런 게임, 뭔가 불공정하지 않나요? 현실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공정무역(Fair Trade)이라고 부릅니다. 공정무역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공정한 게임의 룰은 어떤 것일까요.

농부는 왜 헐값에 바나나를 팔까

“농부가 100원을 받을 거라곤 예상 못했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위험에도 많이 노출될 테니까요.”(김준희) “농부는 돈이 아니라 시간을 투자하니까 많이 받을 것 같진 않았어요. 그래도 600원은 받을 줄 알았죠.”(이상민)

학생들은 5개의 조로 나눠 3000원의 바나나값이 어떻게 분배될지 예상했다.

지난 1일 서울 북서울중 1학년 2반 교실에서는 비영리재단 아름다운커피가 주관한 공정무역 일일수업이 진행됐다. 3000원짜리 바나나 한 송이에서 농부의 몫으로 돌아가는 값을 맞추는 ‘바나나값 나누기’ 퀴즈에서 정답이 100원으로 공개되자 모두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대부분 농부의 몫으로 600원에서 800원 사이를 예상했기 때문이다.

바나나의 90%는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되고 바나나 무역의 75%를 5개 회사가 통제해 공정무역이 필요한 작물로 꼽힌다.

바나나는 전 세계적으로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작물 중 하나다. 하지만 바나나의 생산을 맡고 있는 소규모 농부들은 대부분 가난하다. 수확한 바나나를 시장에 가지고 갈 트럭이나 마차도 없어 다수가 농장을 방문하는 중간 구매자에게 헐값에 바나나를 넘긴다. 최신 시장 정보가 없으며 다섯 개의 기업(Chiquita, Dole, Del Monte, Noboa, Fyffes)이 세계 바나나 무역의 75%를 통제하기 때문에 제대로 협상을 하지 못한다. 국제 거래소에서 책정되는 가격도 들쑥날쑥해 그마저도 받지 못할 때가 많다. 수업을 진행한 이정화 간사는 “농부는 구매자들이 사주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가격을 협상할 수도 없고, 다음에 또 사줄지 알 수 없어 미래 계획도 세울 수 없다”고 설명했다.

농부를 웃게 하는 공정무역 원칙

농부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자는 것이 공정무역 운동이다. 공정무역의 첫 번째 원칙은 중간 구매자를 거치지 않고 농부들과 직접 거래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낀 중간 유통비는 농부들에게 돌아간다. 농부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구성하도록 돕기도 한다. 농부들 개개인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협동조합에서는 할 수 있어서다. 힘을 모아 농작물을 시장으로 이동시킬 트럭을 사는 것이 좋은 예다.

두 번째는 투명하고 장기적인 거래 관계를 갖는 것이다. 공정무역 단체는 농부와 계약할 때 최소 6개월에서 1년간 농작물을 구입할 것을 약속한다. 이렇게 되면 농부는 일정 기간 동안 안정된 수입을 갖게 돼 미래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된다. 세 번째는 들쑥날쑥한 국제 시장가격 대신 일정한 최저보장가격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간사는 “가격의 변동과 관계 없이 최저가격을 보장하면 농민들이 생산비용을 충당하고 가족들을 돌보기에 충분한 수입을 얻게 된다”고 말했다.

농작물 판매량에 따라 지역 공동체에 발전기금을 지급하는 것은 네 번째 원칙이다. 대다수의 농민들은 효율적인 농사 기술을 배울 기회가 없고 적은 비용으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값싸고 해로운 농약도 사용한다. 공동체 발전기금은 기술 교육과 개발에 쓰이게 된다. 농부들이 유기농법을 익혀 생산한 농작물은 판매 단가가 올라가게 되고 다시 농부들에게 돌아가는 몫도 더 많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 간사는 “네팔 말레마을 커피농부들은 소 오줌과 약초를 이용한 유기농 거름으로 커피를 재배한다”며 “이렇게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비료를 사용하면 생산자들의 건강도 해치지 않고, 토양을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아동노예와 강제노동 등을 금지하는 사회적·환경적 기준을 지키는 것도 공정무역의 중요한 원칙이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공정무역은 특히 저개발국가에서 경제발전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생산자와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거래 조건을 제공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공정무역에 참여하기

공정무역 운동에 참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공정무역 마크가 찍힌 상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공정무역 단체가 있기 때문에 마크의 모양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수입제품은 공통적으로 공정무역을 뜻하는 ‘Fair’ 혹은 ‘Fair Trade’란 단어를 마크 안에 포함하고 있어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국내에도 다양한 공정무역 단체가 있다. 아름다운커피를 비롯해 아이쿱생협연합회, 두레생협연합, 그루, 한국공정무역연합 등에서 공정무역 제품을 판매한다.

캠페인을 통해 공정무역을 주위에 알리는 방법도 있다. 서울 북서울중 이수영(45) 교사는 2009년께부터 적극적으로 공정무역을 가르치고 있다. 공정무역은 중학교 2학년 사회 교과서에 나온다. 하지만 1학년 대상 일일특강도 종종 진행한다. 지난 5월에는 교내 공정무역 동아리 제자들과 함께 전교생을 대상으로 공정무역 캠페인도 했다. 5월 9일 공정무역의 날(매년 5월 둘째주 토요일)을 맞아 전날인 8일 아침 정문에 서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공정무역 제품인 사탕 200여 개를 나눠줬다.

공정무역과 관련된 책을 읽거나 수업을 통해 공부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날 수업에 참가한 김태윤군은 “농부들의 노동량과 노동상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성혜빈양도 새롭게 알게 된 공정무역의 지식을 토대로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혔다. “앞으로 물건을 살 때 공정무역 마크를 확인해 볼 것 같아요.”

공정무역이 필요한 주요 농업상품들

※출처 2013 영국 페어트레이드 재단

코코아 | 세계 코코아의 90%가 좁은 땅을 경작하는 소규모 농가에서 생산된다. 코트디부아르·가나가 세계 코코아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두 나라의 코코아 생산자 1000만 명은 최빈층에 속하며, 하루에 2달러로 살아간다.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약 6백만 명, 가나에서는 약 3백만 명이 생계를 코코아에 의존하고 있다. 전 세계 9개 회사가 코코아 공급을 통제하고 있으며 코코아 가공산업의 70%는 네덜란드에서 이뤄진다.

커피 | 커피의 가격 변동은 악명 높다. 불안정한 가격 변화는 농부들이 자신의 수입을 알 수 없게 하고 미래를 불안정하게 한다. 2500만 명의 농부들이 세계 커피의 80%를 생산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커피의 90%가 소규모 땅에서 재배되며, 4천만 명이 이 작물에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그중 1500만 명은 에티오피아인이다. 3개 회사가 전 세계 커피 판매의 42%를 차지한다.

| 차를 재배하는 농부들은 차 소매가의 1%도 안 되는 수익을 받기도 한다. 7개의 차 회사가 직접 소유한 공장과 농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차 생산품의 85%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소농 40만 명이 스리랑카 생산량의 76%, 전 세계 생산량의 5%를 생산한다. 중국의 경우 전 세계 차의 1/3을 생산하고 있으며, 8000만 명의 소규모 차 재배 농민들이 있다.

바나나 | 5개의 회사가 전 세계 바나나 무역의 75%를 통제한다. 영국에서는 4개의 수퍼마켓(Tesco, Walmart, Sains bury’s, Morrisons)이 바나나 판매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바나나는 아프리카·필리핀 등에서도 중요한 식품이며 개발도상국에서 식량 안보를 위해 중요한 작물에 속한다. 바나나의 90%는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돼 대부분 다국적 기업이 거래를 통제하며 나머지가 소규모 농장에서 재배된다.

설탕 | 설탕은 주로 대규모 농장에서 생산된다. 6개의 회사가 세계 설탕 무역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아주 작은 규모의 땅에서 설탕을 재배하는 소규모 농부들은 하루에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매우 낮은 가격으로 설탕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브라질이 세계 최대 설탕 생산국이다.

공정무역 원칙
●생산자 단체(협동조합)로부터 직접 구매한다
●투명하고 장기적으로 거래한다
●합의된 최저보장가격을 제공한다
●지역 공동체 발전기금을 지원한다
●인권을 보장하는 생산방식을 유지한다

글=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도움말=아름다운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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