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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 노벨상 수상자 "여성이 실험실에 있으면…" 실언했다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국 출신의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 팀 헌트(72)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명예교수가 여성 비하 발언으로 교수직을 사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UCL이 10일(현지시간) 밤 성명을 통해 헌트 교수의 사임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헌트 교수의 발언은 지난 9일 서울에서 열린 세계과학기자대회에서 한 남성 우월적 발언 때문이었다. 그는 여성 과학자들과의 오찬에서 “나는 남성 우월주의자(chauvinist pig)”라며 “나와 여성들간의 문제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어 “여성이 실험실에 있으면 세 가지가 일어난다”면서 “먼저 내가 그들과 사랑에 빠지고, 그들이 나와 사랑에 빠지고서 그들에 대해 비판하면 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동성 과학자들만 있는 실험실을 선호한다”면서 “여성들에게 방해 받기를 원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내용은 런던시립대 과학저널리즘 담당 강사 코니 세인트루이스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재하며 전해졌다. 그는 “우리가 아직 빅토리아 시대에 사는 줄 아는가”라며 “그가 영국인이라는 사실이 너무 끔찍하다”고 비판했다. 그녀는 라디오4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발언이 끝난 후 모두가 침묵에 휩싸였다”며 “동료들 모두 지금 이 시대에 저런 성차별적 발언이 가능한 것인지 고민했지만 다른 문화에서 무례하게 비춰질까 봐 그대로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여성 과학자 오찬에는 한국의 여성 과학자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었다.

온라인 상에 헌트 교수의 발언이 확산되며 여러 여성 과학자들도 의견을 밝혔다. 신경과학자인 우타 프리스씨는 트위터에서 “DNA구조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고 난 후 '흑인이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한 제임스 왓슨의 발언과 같은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헌트 교수의 부인 메리 콜린 교수와 같은 대학(UCL)에서 근무하는 소피 스콧 교수는 “나도 지금 사무실에 있는데 헌트 교수의 사진을 보고 사랑에 빠져서 연구를 못해야 하는 건가, 망할”이라고 트위터를 남겼다. 세포를 연구하는 제니퍼 론 박사는 BBC에 “헌터 교수는 명예교수이자 과학자의 롤 모델로서 책임 있는 발언을 했어야 했다”며 “그게 설사 농담이었다고 해도 용서가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이 되자 영국 왕립협회는 “그의 발언은 개인으로서 밝힌 것이지 우리 시각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라는 성명을 내고 사건을 진화에 나섰다.

영국왕립협회의 성명 이후 헌트 교수는 BBC와 인터뷰를 통해 “발언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한다”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반어적인 농담을 한 것인데 관중이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그는 “실험을 모두가 공평하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단지 진실되게 말하려 했을 뿐”이라고 말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실제로 과학계에서는 여성 과학자가 13% 밖에 되지 않으며 대부분 남성 과학자가 주도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정교수의 84%가 남성이다.

헌터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부터 영국 왕립협회의 일원이 됐다. 2001년에는 ‘세포 주기’라는 개념을 처음 만들고 이를 토대로 암 발생 원인을 규명해 노벨 생리학상을 받았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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