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객 “메르스니까 진찰해 줘”… 밤낮 없는 강남 보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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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오후 4시, 강남구보건소 3층에 꾸려진 메르스 방역대책본부에서 보건소 직원들이 자가격리자들과 통화를 하고 있다. 직원들은 하루에 두 번 격리자의 건강상태와 위치를 전화로 모니터링한다. [신인섭 기자]

서울 강남구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잇따라 나오면서 강남구보건소와 강남구청이 ‘방역의 최일선’이 되면서다. 10일 오전 8시,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보건소의 문이 열렸다. 원래 보건소 운영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지만 메르스가 퍼진 뒤로는 오전 8시~오후 8시까지 진료를 한다. 건물 출입구는 발열 상담자 전용 출입구와 일반 출입구로 분리돼 있다. 보건소 3층 회의실에도 새로운 문패가 걸렸다. ‘메르스 강남구 방역대책본부’. 이곳 상담인력은 24시간 대기 중이다.

 밤새 상황을 모니터링한 직원 3명이 지친 모습으로 주간 근무팀 직원 5명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대신 “고생 많으십니다. 몸 잘 챙기십시오”란 아침 인사가 오고 갔다.

 공지사항이 전달됐다. “임신부 1차 양성 판정 뉴스에 임신부들의 문의가 많을 겁니다. 가정집 소독 문의가 오면 집에서 락스와 물을 섞어 소독하라고 안내해 주세요.”

 주간 근무팀이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기가 울려댔다. 이들은 하루 200여 통의 전화를 나눠 받았다. “초등학생 학부모인데요. 우리 아이 선생님이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왔는데 출근을 막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장례식장 건물은 응급실과 떨어져 있어 안심하셔도 됩니다.”

 전날 밤엔 술에 취해 “메르스에 걸렸다”며 인근 지구대에서 소란을 피운 남성이 보건소로 왔다. 경찰관들도 ‘메르스’라는 소리에 손을 쓸 수 없어 보건소에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의심할 만한 정황이 없어 4시간 만에 남성을 돌려보냈다. 보건소 직원들은 “요즘 만취해 ‘메르스에 걸렸으니 빨리 와서 진찰해 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분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전화를 끊지 않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상황도 다르지 않다. 직원들은 출근과 동시에 메르스 관련 상황부터 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건 자가격리자들의 상태 확인. 오전 10시쯤, 구청 권모 주무관이 수화기를 들었다. “구청입니다. 집에 계신가요? 증상은 있으신가요?” 수화기 너머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네.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자가격리통지서가 나왔는데….”

 통화를 마친 권 주무관이 멋쩍게 웃어 보였다. “처음 전화드렸을 땐 욕도 했는데 많이 부드러워지셨어요.”

 이날 오후까지 강남구의 자가격리자는 868명. 삼성서울병원 의사인 35번 확진 환자와 함께 지난달 30일 양재동 L타워에서 열린 재건축총회에 참석한 사람이 714명,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154명이다. 강남구청은 재건축총회 참석자 714명을 일대일로 관리 중이다. 전체 직원 14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투입됐다.

 자가격리자 확인이 끝나야 일상적인 업무 처리에 들어간다. “오전 1시에 퇴근해 7시에 출근했는데 메르스보다 피로가 더 무섭네요.”

강남구청 직원 2명이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한 마트에서 자가격리자들에게 보낸 생필품 꾸러미를 포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신인섭 기자]

 오전 10시, 보건소 1층 진료실 한편에서 흥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성서울병원에 간 적이 있다며 아들과 함께 진료실을 찾은 70대 여성이었다. “불안해 죽겠으니 검사 좀 해 줘요.” 이처럼 보건소를 찾아와 메르스 공포를 호소한 사람이 밤까지 70명을 넘겼다.

 오후 2시, 구청 복지정책과 직원들이 자가격리자들에게 보낼 생필품을 준비하기 위해 도곡동의 한 마트로 향했다. 쌀·라면·생수·손세정제…. 현장에서 포장한 박스 400여 개가 차곡차곡 트럭에 실렸다. 내일까지 보내야 할 분량이란다.

 오후 4시, 보건소에 민원 전화가 이어졌다. 자가격리자의 보호자라고 밝힌 한 여성은 “병원에서 메르스 검사비를 내라고 한다. 보건소에서 처리해 주지 않으면 마스크를 벗고 돌아다니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오후 8시, 진료는 마감됐다. 아침에 귀가한 직원들이 야간 모니터링 교대를 위해 다시 출근했다. 교대와 동시에 전화가 울렸다. “보건소입니다. 네, 열도 있으신가요?”

윤정민·박병현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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