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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병충해에 강한 나리꽃 개량 … “내 얼굴보다 우리 애들 잘 나와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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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진광산 대표가 자신의 농장에서 키운꽃들을 바라보고 있다.

육종(育種·생물이 가진 유전적 성질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거나 기존 품종을 개량하는 일)은 상상의 작업이다. ‘이 꽃과 이 꽃을 교배하면 어떤 꽃이 나올까.’ 상상은 때로는 현실이 되기도 하고, 몽상에 그치기도 했다. 고양시 아를식물원 진광산(68) 대표가 지난 16년간 보낸 시간들이다.

 요즘 진 대표의 농장에는 분홍색 꽃이 곱게 피어나고 있다. 십수 년의 상상 끝에 그가 피어낸 꽃 ‘아를스타’다. 넓은 꽃잎이 하늘을 바라본다고 해 이름 지어진 국내 자생종 ‘날개하늘나리’를 개량했다. “이런 분홍색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병충해에도 강하다”며 진 대표가 자랑을 늘어놨다. 그의 손에서 새로 태어난 꽃은 벌써 20여 종이 넘는다. 5종은 최근 국립종자원에 등록했고, 지난 2015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사진은 그가 개량한 꽃 아를스타.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형이 선물한 선인장 하나가 ‘식물 사랑’에 불을 댕겼다. 그중에서도 육종을 하겠다고 결심한 건 1990년대 중반 견학 차 가게 된 네덜란드에서였다. 당시 그는 고양시의원을 지내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튤립 품종을 대를 이어 개량하는 업체가 많았고 그걸로 받는 로열티도 상당했다. “ 나도 뭔가 하나는 남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육종에 전념했다. 한국이 원산지인 ‘나리’ 꽃을 개량하면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를 키워 그것을 다른 것과 교배시키고, 거기서 나오는 꽃을 또 다른 꽃과 맺어주길 수십 차례. 아름다운 꽃이 나와도 병충해에 약하지 않은지, 꽃은 많이 피는지 검증에 검증을 거쳐야 했다. 그 사이 가족의 생계는 음식점을 하던 아내의 몫이었다.

 평생 육종을 해도 좋은 꽃이 나올까 말까라는데, 진 대표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이 사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부가 종자 수출을 활성화한다지만, 그 누구도 정부 지원 없이 10년 넘게 육종에 매달릴 순 없을 것이다. ”

 인터뷰가 끝난 후 진 대표에게 “신문에 나갈 본인 사진을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진 대표는 자신이 농장에서 키운 꽃 사진만 잔뜩 보내왔다. 그러면서 “우리 애들(꽃)만 잘 나오면 되지, 늙은이가 나오면 되겠느냐”며 얼굴 사진이 크게 나가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그렇게 꽃이 좋으냐고 물었다. 그는 허허 웃으며 “미쳐있다”고 답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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