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종(育種·생물이 가진 유전적 성질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거나 기존 품종을 개량하는 일)은 상상의 작업이다. ‘이 꽃과 이 꽃을 교배하면 어떤 꽃이 나올까.’ 상상은 때로는 현실이 되기도 하고, 몽상에 그치기도 했다. 고양시 아를식물원 진광산(68) 대표가 지난 16년간 보낸 시간들이다.
요즘 진 대표의 농장에는 분홍색 꽃이 곱게 피어나고 있다. 십수 년의 상상 끝에 그가 피어낸 꽃 ‘아를스타’다. 넓은 꽃잎이 하늘을 바라본다고 해 이름 지어진 국내 자생종 ‘날개하늘나리’를 개량했다. “이런 분홍색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다. 병충해에도 강하다”며 진 대표가 자랑을 늘어놨다. 그의 손에서 새로 태어난 꽃은 벌써 20여 종이 넘는다. 5종은 최근 국립종자원에 등록했고, 지난 2015 고양국제꽃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던 형이 선물한 선인장 하나가 ‘식물 사랑’에 불을 댕겼다. 그중에서도 육종을 하겠다고 결심한 건 1990년대 중반 견학 차 가게 된 네덜란드에서였다. 당시 그는 고양시의원을 지내고 있었다. 네덜란드는 튤립 품종을 대를 이어 개량하는 업체가 많았고 그걸로 받는 로열티도 상당했다. “ 나도 뭔가 하나는 남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육종에 전념했다. 한국이 원산지인 ‘나리’ 꽃을 개량하면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를 키워 그것을 다른 것과 교배시키고, 거기서 나오는 꽃을 또 다른 꽃과 맺어주길 수십 차례. 아름다운 꽃이 나와도 병충해에 약하지 않은지, 꽃은 많이 피는지 검증에 검증을 거쳐야 했다. 그 사이 가족의 생계는 음식점을 하던 아내의 몫이었다.
평생 육종을 해도 좋은 꽃이 나올까 말까라는데, 진 대표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이 사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부가 종자 수출을 활성화한다지만, 그 누구도 정부 지원 없이 10년 넘게 육종에 매달릴 순 없을 것이다. ”
인터뷰가 끝난 후 진 대표에게 “신문에 나갈 본인 사진을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진 대표는 자신이 농장에서 키운 꽃 사진만 잔뜩 보내왔다. 그러면서 “우리 애들(꽃)만 잘 나오면 되지, 늙은이가 나오면 되겠느냐”며 얼굴 사진이 크게 나가는 걸 한사코 거부했다. 그렇게 꽃이 좋으냐고 물었다. 그는 허허 웃으며 “미쳐있다”고 답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