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적한 공간서 맛보는 신선한 충격|「남관 창작 50년의 예술세계」전을 보고-윤범모(미술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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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중앙갤러리가 마련한 「남관-창작 50년의 예술세계」전은 몇가지의 신선한 충격들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쾌적한 공간에서의 열기넘친 노대가의 신작발표전이라는 점이 주목을 끌었다. 기왕의 전람회들은 협소한 공간에서 작은 규모로 열리게 마련이었다. 사실 몇몇 의욕적인 작가가 대작으로 자신의 창작열을 쏟고 싶어도 그것을 수용할 적당한 공간확보가 쉽지 않았었다.
한 예술가에게 있어 창작생활 50년이라는 사실은 결코 예사스럽지 않다.
이번 남관전은 반세기 동안 추구해온 그의 예술세계를 총결산하여 한자리에 응집시켰다는 인상을 주고있다. 이보다 더 큰 유화작품이 있을까 헤아려 보게하는 1천5백호 가량의 『흑백상』을 비롯, 60여점은 밀도있고 신비로운 또다른 예원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었다.
한국추상미술계에 커다란 초석을 낳은 작가답게 남관예술의 정수는 비교적 다채롭게 걸쳐졌다. 대상이 완전히 해체되어 버린 화면으로부터 무엇인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하느 것에 이르기까지 형식실험의 신축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출품작에 흐르는 공통적인 주제는 쇠잔해가는 것에의 재해석으로 새로운 생명감을 불어넣었다.
낙엽진 가을의 인상으로부터 회고로 가득찬 허물어진 고적이나 잃어버린 흔적 등 모두다 「내마음에 비친 일그러진 상들」로 남아있는 내면세계의 반영이었다. 오히려 시들어진 꽃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시각은 우주공간을 대상으로 할때도 달과 은하수가 떠있는 적막한 밤하늘로 대체했다.
특히 자연적인 요소보다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인간상, 그것도 일그러진 것에의 조형의지다. 극소로 절약된 형태와 채색은 갖가지의 고통과 비애로 가득찬 표정들이 연출되어 있다. 상형문자에서 따온 이미지까지 사람의 얼굴로 비쳐질 정도였다.
인간상에의 남관적 시각은 구상과 추상의 단계를 초월케한다. 이번의 50년기념전에는 비애와 고통, 그리고 고독한 인간이 보다 밝은 색상으로 표현되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신경지를 펼친 남관예술. 그의 국제적 명성과 함께 늦가을 한국화단이 수확한 알찬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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