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의 민정당사 점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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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시내 3개대학생 2백60여명이 민정당사에 들어가 당대표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인일은 한마디로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이였다.
최근 일부 대학생의 시위에 대해 국민모두가 깊이 우려하고 있는 것은 학생데모가 학원이란 울타리를 넘어 교문밖으로 뛰쳐 나온데서 비롯되었다.
그동안 일부 대학생들은 가두에서 일부 노조와 연계를 맺어 시위를 벌였고, 지난 9월28일 민한당사에서의 연좌농성에 이어 마침내 집권당인 민정당사를 점거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민정당사에서 내세운 14개항의 요구조건을 보면 학생신분으로서는 물론 현실적으로도 쉽게받아들이기 어려운것들임을 금방 알수 있다.
대학생들의 주장 가운데 학내문제는 학도호국단의 폐지뿐이고 나머지는 특정인의 정치해금, 최저임금제실시, 언론자유 보장등 학원외문제들이었다.
학생들의 이런 주장들은 흡사 삼라만상을 관할하려는 것 같아 현실성도 설득력도 없다. 그중에서도 선거법을 개정하는 문제나 해금문제등은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해결돼야할 문제이고 학업에 전념해야할 대학생들이 용훼 할 성질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더우기 이런 잡다한 주장을 관철시키겠다고 떼를 부린것은 학생운동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차 분간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학생들의 이런 행동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고쳐보겠다는 애국적인 충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아줄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동기가 제아무리 순수한 것이라해도 수단이 정당하고 적법한것이 아니면 사회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수는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의사표시의 자유」는 헌법이 주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 가운데 하나다. 대학생들 역시 국민이며 유권자인 이상 그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은 학생신분에 맞게 지성적인 것이어야한다. 그들이 대학생들이기에 보다 당당하고 적법적이기를 우리는 기대하는 것이다.
「의사표시의 자유」가 곧 정당점거나 「폭력의 자유」일수는 없다. 집권당의 대표에게 할말이 있으면 사전에 통고하고 만날수도 있었을텐데 기습적으로 당사를 점거한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다운 행동양식 같지는 않다.
그들의 이러한 행동은 그들이 제기한 문제점들을 해결하는데 오히려 역작용을 할가능성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한편 정국을 주도해야할 막중한 책임을 진 집권당으로서는 이번 사태를 냉철히 분석, 문제들을 순리에 따라 해결하려는 자세는 가다듬어야할 것이다.
일부 과격학생들의 주장이 비록 현실적으로 터무니 없는 것일지라도 무조건 기피하거나 외면하기 보다는 당당한 대화를 통해 납득시키는 것이 공당의 자세일 것이다.
오늘날 학원문제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심각하게 논의되는 국면에 이르렀다. 그런 자리가 아니더라도 학원문제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이 짐작하고 있다.
집권당의 당사를 점거, 농성하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더라도 대화를 할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사태를 누그러뜨리는데는 훨씬 도음이 될것으로 믿는다.
사태를 안이하게 보는것은 안될일이지만 너무 심각하게 보는 것은 더욱 안될 일이다. 학생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물론 응분의 조치가 있겠지만 국민들 역시 학생들이 나서지 않아도 되도록 자기 할일이 무엇인지를 되돌아 보아야 할것이다.
문제해결을 위한 정치인들의 발분을 당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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