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앙코르 공연 가는 산골 관현악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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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013년 10월 함양군 상림에서 다볕 오케스트라가 창작곡 ‘상림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 다볕]

경남의 한 국립대 음악과 1학년 한종호(20)씨는 초등학교 4학년 초까지 문제아였다. 툭하면 친구와 싸우고 게임에 빠져 학교 결석이 잦았다. 부모의 이혼 등으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4학년 말부터 학교 관악부에서 드럼을 배우며 확 달라졌다. 연습실에서 드럼 연주는 물론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 됐다.

 중학에 진학한 한씨는 함양군 초·중·고교생으로 구성된 ‘다볕 유스윈드오케스트라’(이하 다볕)에 가입했다. 음악가가 꿈이었기 때문이다. 고교 방학 때는 위성초 관악부와 다볕의 타악기를 지도하기도 했다. 한씨는 “제게 음악이 없었다면 인생이 계속 암울했을 것”이라며 “꿈을 키워준 초등교 관악부와 다볕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한씨의 인생을 바꾼 게 2005년 구성된 다볕. 인구 4만 명의 함양군은 물론 전국적으로 유명한 다볕은 영화관조차 없는 시골 함양의 자부심을 키워주는 오케스트라다.

 다볕의 단원 80명은 모두 초·중·고교생. 그럼에도 2012년 루마니아·체코·불가리아에서 1차 순회공연을 한 데 이어 오는 7월 13~29일에는 독일·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 등으로 2차 순회공연을 떠난다. 실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단원들은 매주 3시간씩 연습을 한다. 악기 파트별로도 연습을 한다. 창원시향 단원 출신인 백종성(48)·이종성(51)씨 등 10여 명이 지도한다. 연습을 토대로 매년 2월과 11월 두 차례 함양문예회관에서 정기연주회와 두 차례 이상 특별연주회로 실력을 선보인다.

 다볕의 탄생에는 창원시립교향학단 단원이었던 전계준(51)씨의 역할이 컸다. 다볕의 현 지휘자인 그는 위성초등학교에서 3~6학년 60명에게 클라리넷·트럼펫·튜바 등 관악기를 가르치는 방과후 수업을 했다. 하지만 실력있는 학생조차 연주 활동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시골이어서 상급 학교에 관악부가 없거나 개인 레슨을 하는 학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씨와 창원시향 단원들이 다볕을 만든 이유다. 처음에는 초·중·고교생 60명으로 매주 6시간씩 피나는 연습을 했다. 2009년에는 제주 국제관악페스티벌에 초청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당시 제주의 한 신문사 홈페이지에는 연주 동영상이 1주일 이상 올려져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당시 유럽팀도 다볕의 공연을 높이 샀다. 이것이 계기가 돼 유럽팀 초청으로 2012년 첫 순회공연을 했다. 현지 공연장 등의 비용은 초청자가 부담하고 교통비 등 기본경비는 지도자와 학부모·지역주민이 십시일반 모았다. 당시 순회공연 때 체코대사관이 “공연을 마친 뒤 관객이 기립박수를 칠 정도로 민간외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정부와 경남도에 통보해왔을 정도다.

 다볕은 2013년 경남도 지원을 받아 지하 1층, 지상 1층의 연습실을 갖췄다. 지금까지 다볕 출신 10여 명이 경희대·동덕여대·대구대 음대에 진학했다. 전씨는 “다볕은 ‘음악을 통한 소외계층 변화 운동’의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며 “열악한 환경이지만 파리 나무십자가 합창단처럼 세계적인 청소년 연주단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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