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바꾼 자리배치에 부드러운 분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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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40년 분단이래 처음으로 남북경제회담이 열린 판문점회의장은 지금까지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북이 마주보며 회담을 진행할수 있도록 배치했던 장방형회담탁자를 동서로 바꾸어 배치.
이에 따라 우리쪽 대표가 북측 관할지역에, 북측대표는 우리영토에 앉아 회담을 진행하도록 변화.
때문에 남북양측 대표들은 남쪽문과 북쪽문을 통해 각각 회담장에 들어와 분계선을 넘은 뒤 우리측은 서쪽에, 북한측은 동쪽에 서로 마주보며 회담을 진행.
이같이 회담장 테이블 배치를 바꾼것은 이번 경제회담대표쌍방이 각 7명씩으로 현재의 비좁은 회담장으로는 마주보고 앉을 공간이 없었기 때문인데 이것만으로도 회의벽두의 분위기는 자못 부드러워진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회담이 시작되기 한시간전부터 회담장에는 우리측내외신기자 82명과 북한측 50여명의 보도진이 몰려들어 경제회담에 쑬린 내의의 관심을 나타냈다.
이날 북측기자들 가운데는 지난번 수재물자인도·인수때 인천·판문점·북평항에 왔던 보도진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고 우리측기자들은 구면인 북한측기자들과 『그동안 별일없었느냐』며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북측 기자들은 『어젯밤 개성에서 하룻밤 묶고왔다』면서 『경제회담에서 어떠한 방안을 제시할것 같으냐』고 넌지시 우리측의 전략을 탐색.
북측 보도진 가운데는 소련의 프라우다및 타스통신, 중공의 신화사통신등 공산권기자도 상당수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날 9시57분 우리측 김기환수석대표를 선두로 우리측 대표가 입장을 완료했고 뒤이어 이성록을 단장으로한 북측 대표단이 입장.
북측 이단장이 먼저 『반갑습니다』고 인사하자 우리측김대표는 『그렇습니다. 우리앉아서 얘기할까요』라고 말하며 착석.
김대표는 『우리대표를 먼저소개할까요』하며 일일이 7명의 우리대표를 소개했고, 뒤이어 북측 이단장이 오른쪽부터 차례로 북측대표들을 소개.
먼저 김대표가 『때늦은 감이 있으나 겨레의 공동번영을 위하고 미래를 설계할 경제전문가들이 만나게 됐다』고 말하자 북측 이성록은 『평양을 떠날때 김환 정무원부총리가 신병현부총리에게 안부를전해달라면서 편지도 좋지만 직접 만났으면 좋겠다』고 전하더라고 전언.
이에 우리측 김대표가 『회의가 자주 열리면 그럴 기회가 있겠지요』라고 대답했으나 이는 다시 한번 남북한부총리간의 직접면담을 희망하는 정무원 부총리의 당부를 재강조.
○…이날 양측대표들은 30여분간의 환담을 하면서 이구동성으로 남북한간의 경제회담이 좋은 결실을 얻었므면 하는 의사를 표명.
우리측 김수석대표는 북측이단장이 『전부 경제사업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어 앞으로 회담이 잘풀려 나갈것 같다』고 말한데 대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는데 잘해보자』고 했다.
또 북측의 백준혁대표가『금년에 풍작이 들었는데 양측경제인들이 모여 대화의 씨를 뿌리고 성장촉진제와 비료도 주고 김도 같이 매면 좋은 열매가 맺힐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우리측의 구본태대표는 『오면서보니 새들이 남북을 자유롭게 날고 있더라. 회담이 잘될 것같다』고 응수.
북한의 백준혁이『날씨도 온화하고 기자선생들도 웃는 모습이다』고 말하자 김수석대표는 『바깥날씨는 차가와지더라도 이 회의장안은 항상 따뜻할수 있도록하자』고 강조.
○…양측대표단는 약35분동안 날씨·추수·김장등을 화제로 꺼내 환담을 계속했는데 김수석대표가 『한국은 집집마다 냉장고를 갖고 있어 김장도 20포기 미만정도로만 담근다』고 하자 북측 이단장은 『북한은 공업적인 김치공장이 있어 1년내내 김치를 담그지않고 사서먹는 사람도 있다』고 응답.
이날 우리측 차상필대표가 『북한에도 경제특구가 있느냐』고 묻자 북측 백준혁대표는 『그런게 없다』고 간단히 답변. 특히 이날 북측대표들은 우리측 김수석대표의 직책인 해외협력위 기획단 기능에 관해 많은 관심을 표명.
○…이날 회담은 당초에는 보도진들이 참가한 가운데 완전 공개로 진행키로 되어있었으나 현장의 취재진이 1백30여명이 넘어 혼란을 빚자 양측실무대표들의 합의로 대표단과 기록요원만 남고 전보도진이 철수한 가운데 10시30분부터 본격적인 의제토의를 시작.
한편 환담이 진행되는 동안 북측대표들은 지난번 수재물자제공과 경제사정·관광시설등에 관해 간간이 자랑삼아 얘기를 건네기도 했는테 『관광객수가 얼마나 되느냐』는 우리측 김대표의 질문에 북측 이단장이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고 말꼬리를 흐리자 옆에 있던 백준혁이 농사얘기로 화제를 돌렸다.
또 우리측이 『4, 5년 정도면 세상이 많이 달라진다』고 한데대해 북측은『북에서는 4, 5년은 커녕 1년, 한두달에도 몰라볼 만큼 바뀐다』고 발전상을 과장하기도 했다.
○…10시50분부터 우리측 김수석대표는 기조연설문을 약20분간 읽어내려 갔는데 10시54분쯤 연설문가운데 버마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동안 북측대표들은 아무말도 하지않고 잠잠히 김대표의 발언을 경청.
우리측 기조발언이 끝난 뒤 11시 30분부터 북측 이단장의 기조발언이 시작됐는데 이단장은 이 발언에서 『경제분야에서 합작과 교류를 행할수 있는 기회로 보아 기쁘게 생각한다』고 북측이 즐겨쓰는정치적 용어인 「합작과 교류」를 사용. 【판문점=김현일·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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