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가톨릭에 자본주의 논쟁 |주교단·평신도위, 「레이건 정책」에 상반된 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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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 가톨릭에서는 요즘 자본주의쳬제가 현실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서로 다른 두개의 보고서가 나와 논쟁이 한창이다. 이논쟁은 「레이건」대통령이 추구해온 이른바 「공급사이드경제정책」과 부의 분배를 위한 정부의 역할축소등을 서로 반대 입장에서 해석하고 있기때문에 이념투쟁 이상으로 현실비판의 성격을 띠고있다.
첫 보고서는 지난6일 가톨릭평신도위원회에서 발표한 80페이지짜리로 워싱턴의 보수적 AEI연구소의 「마이클·노바크」가 작성하고 「사이먼」전재무장관, 「헤이그」전국무장관등 27명의 전직관리및 사업가들이 작성한 것이다.
이 평신도 보고서가 자본주의체제가 사회에 미치는 장점들을 담고 있는데 반해 11일에 발표된 1백20페이지짜리 가톨릭주교회의 교서초안은 경제정책의 목표를 정의실현에 두었다.
밀워키의 「램버트·위클랜드」대주교가 이끄는 5인주교단이 작성한 이 선언은 「레이건」대통령의 경제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있다.

<지금의 소득·부의 불평등은 해소돼야>5인주교단
우리가 가난한 자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이 약하고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제생활에 도덕적·종교적 가치를 전용시키는것이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고있다. 종교와 도덕적 신념이 그 자체만으로 경제적 딜레머를 해설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의 도덕적 전통이 올바른 길을 찾는데 큰 공헌을 하리라고 확신한다.
경제가 사람의 존엄성을 지키게끔 기능을 발휘하려면 노동에서 상당 수준의 자기구현을 하고 적절한 임금을 받고 가족과 국가와 세계속에서 단결과 융화를 이룩할수있어야 된다.
미국은 하나의 사회로서 긍지를 가질만한 성취를 이룩했지만 실패가 있었고, 어떤 것은 방대하고 추한 실패였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국내에는 굶주림이 아직 지속되고 있고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집이 없어 교회지하실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다.
우리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할때가 왔다고 본다.
우리는 미국과 세계에서 현존하는 규모의 소득및 부의 불평등은 도덕적으로 용납할수없다고 판단한다.
우선 미국의 실업율을 3∼4%로 내려야하고 소득과 부의 불공평한 분배를 시정해야 한다.
이 원칙은 취업을 통한 경제참여를 높이기위한 정책에 우선권을 두고 과거에 부당하게 차별당한 계층의 상황을 개선시킬 정책을 요구한다.
파업이 정당한 댓가를 얻어낼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상황에서 노조는 합법적으로 파업을 할수 있어야 하고 단체교섭을 위해 노동자는 노조를 결성할수 있어야 된다.
사유재산권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국가가 무제한으로 부를 축적할 권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성 정신상태는 즉각적인 충족감을 요구하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를 저당잡히고 궁극적으로는 공정한 질서의 바탕을 뒤흔들 위험이 있다.
과분한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과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서 문화적 가치와 제도를 개혁해야 된다.
미국은 직접적인 재정원조와 민간투자를 장려해야 하고 시장개방조치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한다.
근년에 와서 개도국에 대한 미국정책은 사람의 기본적 필요와 사회·경제발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남북문제에 대한 동서간 이념적 평가를 토대로한 선별적 원조로 욺겨가고 있다. 그결과 개도국은 동서간 분쟁의 테스트 케이스가 되고 있다.

<분배보단 투자·성장으로 빈자에 혜택을>평신도위원회
합리주의의 입장에서 가난한자와 실업자를 진정으로 돕는 것은 정부 아닌 자본주의체제와 개별 기업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가난한자들은 정부가 주도하는 소득의 재분배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상상력과 투자활동으로 발생하는 경제성장을 통해 혜택을 받게 된다.
자본주의와 함께 자유가 경제발전에 미치는 중요성은 매우 크다.
서독와 일본 및 태평양 연안의 소국들이 소련·중공·동구권·라틴 아메리카등의 사회주의국가들 보다 훨씬 높은 생활수준을 성취한 사실이 그같은 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한 나라라고 해서 반드시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역할은 능률과 생산성을 높이는 자원과 인력의 분배자이나 사회복지를 창출하는 「애덤·스미드」의 「보이지 않는 손」은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가 한 사회의 풍요나 윤리적 수준을 자동적으로 높이는 것은 아니고, 훌륭한 사회는 동적인 경제뿐아니라 능동적인 정치체제와 박력있는 도덕 및 문화체계도 갖추어야 된다.
기업인들이 다른 사람의 복지에도 관심을 보이는 도덕성을 갓는것이 중요하다. 프랑스의 사회비평가 「토크빌」은 『자기 이익을 올바로 인식할때 그것은 개인이익뿐 아니라 타인의 이익까지를 포함하는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세기초의 미국사회에서 미국인들이 갖고 있는 상호결합본능을 인지했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을 미국사회를 분일된 개인주의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았었다.
이상호결합본능은 유럽의 경우 정부나 혹은 지도급 유력인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나 미국에서는 조합, 혹은 협의회같은 단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윤동기가 포르노나 사창굴등 나쁜 결과를 빚는 예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잘못이 아니고 자제력 없는 개인의 비윤리성 때문이다.
이윤이라는것은 단순한 계산의 개념이상의 것이다. 이윤은 모험을 감행하거나 창출에 대한 하나의 보상형태로 이해되어야하며 창조적 성장을 위한 밑거름으로 받아들여져야한다. 누구나 발전은 이윤이 있음으로해서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런면에서 모든 상품들은 이윤을 추구하게되며 이윤없이는 많은 사람들의 욕구가 충족될수없다.
미국 사회에서 노조가 맡고 있는 정치적 역할, 그리고 다국적 기업과 그 이윤동기는 높이 평가할만하다.

<워싱턴=장두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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