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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떠나라, 알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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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떠나라,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여행에서 깨닫는 것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면 누구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롭고 매력적인 무언가를 만날 거라 기대한다. 이 영화들의 주인공은 그런 바람을 실행에 옮겼다. 삶의 새로운 활력을 꿈꾸며. 그들이 여행의 끝에서 얻은 깨달음을 정리했다.

<트립 투 이탈리아>

개봉일 6월 4일 감독 마이클 윈터바텀 출연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
누가 영국 배우 스티브 쿠건(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롭 브라이든)
어디로 이탈리아 여행의 목적 영국 신문 ‘옵저버’에 이탈리아 여행 기사를 쓰기 위해

이 영화는 2010년 영국 BBC에서 방송했던 6부작 TV 시트콤 ‘더 트립’(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속편이다. ‘더 트립’에서 옵저버의 제안으로 영국의 여러 맛집을 여행했던 두 사람이 이번에는 이탈리아로 향한다. 두 주연 배우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각자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점도 전편과 같다. ‘트립 투 이탈리아’ 역시 지난해 4~5월 BBC에서 6부작 시트콤 버전으로 방영됐다.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는 그것을 짧게 편집한 것이다.

쿠건과 브라이든은 영국의 이름난 코미디 배우다. 또한 서로를 잘 아는 친구다. 두 사람이 여행 내내 만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만 봐도 지루할 틈이 없다. 1930~50년대 할리우드를 주름잡았던 배우 험프리 보가트부터 ‘다크 나이트’ 3부작(2005~2012,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크리스천 베일, 톰 하디, 마이클 케인까지 수많은 미국·영국 배우들의 성대모사가 줄을 잇는다. 그뿐 아니다. 서로를 놀리는 데도 열심이다. 예를 들면, 할리우드에 먼저 진출한 쿠건에게 브라이든이 코미디영화 ‘트로픽 썬더’‘(2008, 벤 스틸러 감독)에서 “극이 시작하고 10분 만에 죽는 역할 아니었냐”고 묻는 식이다. 음식의 천국 이탈리아의 황홀한 요리에 감탄하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이탈리아에 망명했던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1788~1824)과 셸리(1792~1822)의 흔적을 찾고, 그들의 묘지를 방문한다. 이들의 여행은 자연스레 삶의 황혼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진다. 젊은 여성의 눈에 자신들은 투명 인간 같은 존재가 됐다는 농담을 나눈 두 사람은 폼페이 유적지에 들르고, 폰타넬레의 지하 묘지에 수북이 쌓인 두개골을 바라본다. 극 중반 브라이든은 쿠건에게 묻는다. “200년 뒤 우리는 어떻게 기억될까?” 이에 쿠건은 시답잖은 농담으로 답한다.

쿠건과 브라이든은 올해 50세의 중견 배우다. 이 영화는 이미 중반을 넘긴 그들의 삶이 이 여행을 통해 그다지 크게 바뀌지 않으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잠시 떠나온 일상은 여행 중에도 그들에게 끊임없이 손을 뻗는다. 이혼한 부인 사이에 낳은 아들(티모시 리치)이 이탈리아로 쿠건을 찾아온다. 브라이든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할리우드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사실을 알리려 하지만, 아내는 세 살배기 딸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며 전화를 끊는다. 그들의 앞에는 책임져야 하는 것들과, 혼자 짊어져야 하는 외로움과, 앞으로 더 이뤄야 할 목표들이 널려 있다. 이 영화는 쿠건과 브라이든이 앞으로의 삶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순간에 막을 내린다. 일상을 떠나 찾은 여행지에서 우리는 비로소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본다. 여행은 삶의 일탈이 아니라 그 일부라고 ‘트립 투 이탈리아’는 말하고 있다.

<미스 리틀 선샤인>

제작 연도 2006 감독 조너선 데이톤, 발레리 페리스 출연 아비게일 브레슬린, 그렉 키니어, 폴 다노, 앨런 아킨, 토니 콜레트, 스티브 카렐

누가 어느 하나 멀쩡한 사람이 없는 후버네 가족 여섯 명
어디로 어린이 미인 대회가 열리는 캘리포니아 레돈도 비치
여행의 목적 일곱 살인 막내딸 올리브(아비게일 브레슬린)의 미인 대회 출전을 위해

후버네 가족 중 누가 제일 별난지 가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버지 리처드(그렉 키니어)는 사람들을 승자와 패자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쉐릴(토니 콜레트)은 보름째 저녁상에 닭 날개 튀김을 내놓는다. 할아버지 에드윈(앨런 아킨)은 손자에게 삶에서 섹스가 가장 중요하다 가르치고, 열다섯 살 아들 드웨인(폴 다노)은 입을 굳게 닫고 수첩에 글을 적어 가족들과 의사소통한다. 외삼촌 프랭크(스티브 카렐)는 동성 연인에게 차여 자살을 기도했을 정도로 우울한 상태다. 통통한 뱃살을 자랑하는 막내딸 올리브는 매일같이 미인 대회에 나가는 꿈을 꾼다. 리처드의 기준에 따르면이들은 모두 패자다. 올리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다 같이 고물 차에 올라타 레돈도 비치로 향하며 후버네 가족은 그들이 직면한 실패를 하나둘 깨닫는다. 미인 대회 무대가 걱정돼 울먹이는 올리브에게 할아버지가 말한다. “진짜 패자는 지는 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이야.” 영화의 결말에서 미인 대회의 무대에 다 함께 올라 요상한 춤을 추는 후버 가족. 그들에게 성공과 실패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결과가 어떻든 그들 곁에는 서로가 있을 것이므로.

<다즐링 주식회사>

제작 연도 2007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오웬 윌슨, 애드리언 브로디, 제이슨 슈워츠먼

누가 프랜시스(오웬 윌슨), 피터(애드리언 브로디), 잭(제이슨 슈워츠먼) 세 형제
어디로 인도
여행의 목적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어머니(안젤리카 휴스턴)를 만나러

형제인 프랜시스, 피터, 잭은 지난 1년 동안 서로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지냈다. 어느 날, 맏형 프랜시스가 두 동생을 ‘다즐링 주식회사’라는 이름의 인도 횡단 열차에 불러 모은다. 그는 동생들에게 오랫동안 보지 못한 어머니를 만나러 가자고 선언한다. 더불어 이 여행을 통해 형제애를 되찾자고 말하는 프랜시스. 하지만 소원했던 관계가 순식간에 회복될 리 없다. 세 형제는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한다.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더 사랑받았던 이가 누구였는지 따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세 형제는 우연히 어느 인도 소년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히말라야 산맥에서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어머니를 만나면서 어떤 변화를 겪는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들을 따뜻하게 안아준 어머니가 이런 말을 한 데서 그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건 그만하는 거다. 그건 너무 매력 없어.”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달려가는 기차처럼, 세 형제의 삶이 드디어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내일의 행복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인투 더 와일드>

제작 연도 2007 감독 숀 펜 출연 에밀 허쉬

누가 갓 대학을 졸업한 크리스토퍼(에밀 허쉬)
어디로 알래스카
여행의 목적 그곳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기 위해

크리스토퍼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대학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그는 번듯한 직장이나, 불화로 가득한 가족이나 사람들 속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 재산 2만4000달러를 빈민 구호 단체에 기부하고 자연에서 자급자족의 삶을 살기 위해 알래스카로 떠난다. 가족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그 여정은 고행의 연속이다. 물살에 휩쓸려 차를 버리기도 하고, 아무 준비도 없이 카약을 타고 강을 건너다 죽을 뻔하기도 한다.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현대 문명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마침내 알래스카에 도착한 크리스토퍼는 버려진 버스에서 살아간다. 그토록 바랐던 야생에서의 삶. 그러나 자연은 생각보다 거칠고 무자비한 세계다. 몇 달 뒤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진정한 행복은 그것을 사람들과 나눌 때만 의미 있다는 사실을. 돌아가려 하지만, 그가 건너왔던 강이 그새 녹아 엄청나게 불어나 버렸다. 버스로 돌아와 풀을 뜯어먹으며 근근이 버티던 그는 독초를 먹고 서서히 죽어간다. 과연 그가 마지막 순간 깨달은 행복의 정체는 무엇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그 물음이 더욱 깊게 다가온다.

글=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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