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환자 병실 환기구 없어 … 6인실을 2인실 3개로 쪼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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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의료기술은 선진국 수준이다. 중동·중앙아시아 등지에 병원을 수출하고 27만 명가량(2014년)의 해외 환자가 들어올 정도로 발전했다. 지난 20년 동안 ‘대한민국 0.05%’에 해당하는 우수 인재들이 의사가 됐고 병원에 많은 투자가 이뤄진 덕분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부실한 데가 한두 곳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런 불균형이 메르스 사태를 야기했다고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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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진원지는 평택성모병원이다. 좀 더 정확하게는 최초 환자(68)가 입원한 8104호다. 이 병실은 환기와 배기시설이 없었다. 보건복지부 메르스 민관합동대책반 역학조사위원회 최보율(한양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위원장은 “원래 병실마다 환기구와 배기구가 있어야 된다. 그게 없었고 에어컨만 있었다”고 말했다. 창이 있었지만 크지 않았고 밑으로 여는 방식이어서 환기에 별로 도움이 못 됐다. 고려대 의대 천병철(예방의학과) 교수는 “병실의 환기 문제는 감염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8104호에는 왜 환기시설이 없었을까.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평택성모병원을 조사한 결과 병원 측이 6인실을 2인실 3개로 쪼갠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큰 방 중간에 석고보드로 칸막이를 쳐서 방을 나눴다. 8104호 외 나머지 2개 방에는 환기시설이 있었다. 방을 나누면서 환기시설이 없는 공간이 8104호가 됐고 거기가 메르스의 진원지가 된 것이다. 배기와 환기가 안 돼 방 안에 최초 환자가 내뿜은 바이러스가 가득 찼다. 비말(큰 침방울) 또는 에어로졸(미세한 물방울) 형태의 침방울에 바이러스가 묻어 병실 밖으로 퍼져나갔다.

 병원이 병실을 쪼갠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환기구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료기관의 시설 규격은 의료법 시행규칙이 규정한다. 이 규칙 중 입원실과 관련된 조항은 5개에 불과하다. 2인실 이상인 경우 환자 1인당 4.3㎡(1인실은 6.3㎡) 이상이면 된다. 그 외 3층 이상 불가(내화 구조이면 가능), 소아병실 면적, 산모 입원실 등과 관련된 조항이 있다. 일반 입원실은 면적 기준만 맞으면 된다는 뜻이다. 배기시설, 침대 간 거리 등 감염 예방을 위한 기본적인 시설 규정이 없다. 지난해 중순 3·4인실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수입이 줄자 일부 병원이 그중에서 침대 한두 개씩 빼는 일을 벌인 것도 이런 느슨한 관리와 무관치 않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김소윤(의료법윤리학) 교수는 “의료기관 종류별 시설 기준과 규격은 1960년대 일본 법제를 기본으로 정한 후 50년이 흘렀는데도 현실에 맞게 개정하지 않았다. 시설 기준을 강화하되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의료기관의 질을 주기적으로 평가해 인증하는데, 거기에도 시설 기준이 미약하게 들어가 있을 정도다. 병실과 인력 등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돈이 많이 든다. 정부는 그동안 이에 대한 투자를 피했다. 특히 감염 관리에 거의 돈을 쓰지 않는다. ‘외화내빈’인 한국 의료의 현주소가 이번 사태에 여실이 드러났다.

 미국은 의료시설 기준 규격을 정한 가이드라인이 150페이지(호주는 200페이지)에 달한다. 난방, 환기 및 냉방시스템, 전기, 급수·배수, 공간 크기 등의 건물 기준이 있고 보건의료시설의 환기에 대한 사항이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병실당 최소 외부 통풍량, 전체 통풍량(옥외·옥내), 상대 습도, 온도, 소음도 등을 일일이 규정하고 있다. 호주·뉴질랜드도 출입구·창문·천장·바닥 등의 기준을 세세히 정해놓고 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신진 기자, 박효정 인턴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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