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법개정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요즈음 남편앞으로 여자들 편지가 자주 온다. 다 늘그막에 분홍빛 사연인가 하고 뜯어보면 가족법 개정안에 서명해달라는 편지다.
지금까지 16통의 편지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나는 지난번 틀림없이 조의원님을 찍은 사람입니다. 이번에 서명안하시면 다음 선거에 표로 뭔가를 보여 드리겠읍니다』 라는 내용이다.
나야 여자인데다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딸이 있고, 또 이번에 알고보니까 너무 경우 틀리고, 남녀차별하는 억울한것 많아서, 개정안에 적극 찬성이지만 거의가 남자들인 국회의원들은 별반응이 없는것 같다.
보통때는 여권을 존중하고 남녀평등을 외치던 내 남편도 내가 그 주부편지를 내밀면서 『빨리 앞장서요! 서명 안하면 여자들 표 다 다른데로 갈거예요!』 하고 협박(?) 해도 서명을 안한다. 우선 남자이기때문에 여자인 나만큼 관심이 없을거고, 그보다는 선거철이 눈앞에 다가온지라 개정안에 반대하는 유림쪽에도 신경이 쓰일거고, 아직까지 무소속이다.
20명 이상 서명을 안하면 발의가 안되니 앞장서봐야 별 성과가 없을거라는 생각때문에 편지는 열심히 들여다보면서 지나쳐 버리는것 같다.『아유, 답답해! 내가 국회의원이라면 당장 나서겠네!』하고 떼를 쓰다가 생각나는게 우물우물 주저하는 국회의원들에게 협조를 청하고 부탁하느니 정당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꼭 당선돼서 국회의원 배지 달자는게 아니라 여자들의 의사표시로 정당이념은 가족법 개정이고, 정당이름은 「가족법 개정당」좀 어색하면 「여권당」 이라고하고 총재는 지금 회장 하시는 분이 하시고, 미국처럼 다른 당 총재들과 TV공개 토론을 해서 화제를 일으키고….
그래서 이번 12대에 전국 92개구에 빠짐없이 여성후보를 내세우고, 일제히 선거홍보에 『가족법을 개정하자』 는 구호를 내걸고, 유세장에서 모든 여성후보가 가족법개정안에 대해 열띤 웅변을 내뿜는다면 거의가 남자들인 다른 기존정당이나 후보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할것 같다.
당선이 목표가 아니니까 공천 과정에서 낙하산식이나 총재집에 새벽같이 드나드는 아침형 후보도 없을거고, 그래서 민주정당이 어떤것인가? 에 대해 보여줄 기희도 있을거고….
소속정당 눈치보며 공천신경쓰고 표밭 다지기에 바쁜 남자 국회의원들에게 편지하고 전화하느니 직접 정당을 만들어 의사표시를 하자는 얘기다. 내가 너무 정치적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