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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고분은 영산강 유역서 전래"|광주박물판, 「서남단문화권」 조사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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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국립광주박물관 (관장 이을호)은 최근 백제 문화개발 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해남 월송리 조산고분』 『함평 문화유적 지표조사』 『영암 만수리 고분군』 의 발굴에 대한 3편의 조사보고서를 냈다. 모두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서남단의 문화권에 대한 조사보고다.
이 지역은 최근 학계의 깊은 관심을 끌고 있는데, 백제문화권 하한선의 남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백제 문화유적이라면 초기의 위례성 중심의 한강유역이거나 그후의 공주· 부여 등 왕도중심의 금강유역, 아니면 말기의 익산중심 문화권 등에 관심이 집중됐을 뿐 ○영 이남지역은 방치돼 있었다.
한반도 서남단에 묻힌 고대문화의 유적에 대한 조사보고는 백제문화의 일본 유출과정을 살피는데도 큰 도움을 준다.

<조산고분>
지난73년4월 전남 해남군 현산면 월송리 증산부락 주민들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백제석실분이다. 무덤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했고 단지 「조산」 이라고만 전래돼 왔다.
조사자 (서성훈· 성낙준) 들은 조산고분이 늦어도 6세기초에 축조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석실분의 주인공은 옹관묘 사회에 지배세력으로 등장한 인물로서 묘 제상의 변화뿐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인 면에서도 변화를 가져온 실력자.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일본의 전방후원분 등에 나타나고 있는「조산」 또는 「작산」 등의 분구 명. 우리 나라의 호남지역에서만 유달리 같은 분도 명이 확인되고 있는데 특히 「조산」 은 영산강유역의 해남·무안·나주지역에 분포된 옹관묘·석실 묘에 전해오고 있다. 학자들은 일본고분의 선행형식이 영산강유역의 고분들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을호 박물관장은 『이 고분에서 나온 1백96점의 유물은 공주의 무령왕능 출토품에 버금가는 자료』 라며 『백제문화를 단지 부여족의 남하문화로만 생각지 말고 이 지역 한족의 원주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일 때』 라고 지적했다.

<함평 문화유적 지표조사>
영산강 유역 문화유적에 대한 단계적 지표조사 사업의 첫 단계 사업이다. 조사대상은 주로 지우묘·선돌·고분 등.
조사자 (서경훈· 강대규· 이기룡) 들은 현재 영산강 유역에서 신석기유적은 없지만 청동기 이후 역사시대에 이르는 유적은 많이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청동기시대의 지석묘는 집중 분포 현상을 보이며 이후 4세기에 이 지역이 백제에 편입되나 당시 영산강유역은 백제와는 또 다른 토착의 독특한 지방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영암 만수리 고분군>
두 고분이 동일지역 안에서 봉분이 서로 잇닿아 있는데 크게 옹관묘와 토광묘로 구별된다. 공동묘의 성격을 띠는 옹관묘는 영산강유역 대형 옹관묘의 특징적인 면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토광묘는 단장묘다.
일본인 학자 유광교일은 영산강유역 대형 옹관묘가 한반도에서 가장 일본적 색조가 짙은 고분이라고 주장한바 있고, 성낙준씨는 이들이 이 지역에서 성장하던 마한 제소국의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조성되기 시작, 4세기 후반 백제에 편입되면서 한강유역의 백제문화 영향으로 크게 발전했으나 5세기 후반 남하한 백제가 지방통치체제를 강화하면서 묘제자체의 변화를 일으켰다고 지적한바 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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