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명수 칼럼] 노후준비를 못하는 네가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명수 객원기자

요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이 창궐하고 있는 것은 메르스 확산방지의 ‘골든타임’을 놓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메르스 장악에 가장 중요한 초기에 보건당국이 36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잠복기 접촉자 추적 개시 시간이 늦어졌고, 그 이후 모든 대책이 순차적으로 지연됐다. 그 사이 메르스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의학 용어로 골든 타임은 병원에서 생과 사를 오가며 환자의 목숨을 다투는 중요한 시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 응급 외상 환자의 경우 1시간, 뇌졸중 발병 환자는 3시간, 또한 화재 발생의 경우에는 불이 붙은 최초의 5분이 매우 중요한 시기로 이 시간 안에 대응을 제대로 해야 위기를 막아낼 수 있다.

인생에서 위기는 화재, 응급 상황 등 사고나 질병으로만 오는 것은 아니다. 고령화의 진전으로 오래 사는 리스크도 있다. 이른바 장수리스크다. 장수리스크는 준비된 노후자산이 노후생활 도중에 소진되는 것을 뜻한다. 노후자산이 바닥나면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돈이 없어 빈털터리로 난민처럼 지내야 한다. 노후준비를 열심히 하면 장수리스크를 어느정도 피할 수 있다. 자산의 투자수익률을 끌어올린다거나 일자리를 오래 가지는 것이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노후준비 방법이다.

노후준비의 골든 타임은 40~50대

노후준비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이 시간을 놓쳐버리면 노후준비는 영영 물건너 가 고단한 삶이 되는 건 뻔하다. 실탄없이 총만 들고 전장터에 나가는 병사와 똑같은 처지다. 인생에서 노후준비의 골든타임은 40~50대다. 소득활동이 가장 왕성한 시기로 노후준비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되는 때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대부분의 노후관련 설문조사를 보면 노후가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을 하면서 노후준비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못하다는 답을 내놓는다. 왜 그렇까. 노후준비를 못하는 4가지 이유를 정리해 봤다.

1.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다. 노후 준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머릿 속이 하얘진다.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하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등등 을 생각하다보면 가슴이 답답해 지고 답을 떠오르지 않아 자포자기 심정이 된다. 그러다 보면 행동경제학자들이 말하는 '현상유지 편향' 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변화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금 그대로 있으려고 하는 본능이다. 현상유지 편향은 변화를 시도하다가 얻는 불이익은 아무 것도 안해 생기는 불이익보다 타격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생긴다고 한다. 이런 현상유지 편향이 강해지다 보면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노후준비는 뒷전으로 밀어놓고 자녀교육이라든가 부채상환 등 목전의 지출에 우선적으로 돈을 쓰게 된다.

2.부모 등골 빼먹는 자녀 교육비다. 노후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할 시기인 40~50대에 자녀교육 문제에 매몰되는 건 대한민국 사람의 숙명이다. 우리나라 가계의 자녀 교육비 부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의 평균과 비교해봐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 가계의 교육비 부담 비중은 37.2%로 OECD에서 칠레(40.1%) 다음으로 높다. 또 OECD 평균 16.1%에 비해서는 무려 21.1%포인트나 높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국내 가구주의 '교육비 부담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살펴봐도 자녀교육비 지출이 "부담스럽다"라는 응답이 전체 가구의 76.1%나 된다. 자녀교육비 지출에 대한 가구주 부담이 매우 큰 것이다. 최근 자녀의 부모부양 책임의식이 낮아지고 있는 만큼 노후준비 없는 지나치게 맹목적인 자녀교육비 지출은 노후빈곤의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3.근거 없는 낙관적 전망이다. 당장 구조조정으로 옆자리의 동료가 옷을 벗어도 자신만은 오래 직장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건강을 잃는 것도 나만큼은 예외겠지 라며 의료비 보장에 대한 준비를 소홀히 한다. 미래를 아무런 근거없이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구체적인 준비를 하지 않다 보니 모든 계획이 틀어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필요한 노후자금 규모를 매우 적게 추산하는 오류에 빠진다. 사람이란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받아들이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현실성있는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이건 주식투자에서 주가가 한번 오르면 마냥 오를 것같은 장밋빛 전망에 빠져 매도 타이밍을 놓쳤던 경험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4. 눈앞의 이익 중독증이다. 퇴직할 때 회사에서 받는 퇴직금을 연금으로 남겨두지 않고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비율이 92%나 된다고 한다. 받을 돈을 찔끔 찔끔받는 것보다 나중에야 어찌되든 목돈을 한 번에 챙기는 더 낫다고 생각하는 월급쟁이가 많은 것이다. 인간은 미래보다는 눈 앞의 이익을 좇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은퇴후 연금을 받을 목적으로 가입했던 상품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중도 해지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연금보험 가입자의 절반 이상이 중도해지한다고 한다. 연금은 은퇴 후에 일정한 소득을 만들어줄 ‘은퇴 후 월급’과도 같은 것이다. 급한 자금이 있어 연금을 해지하게 되면 당장의 어려움은 해결했을지 모르지만 은퇴 후 더 큰 손해로 되돌아올 수 있다.

서명수 객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