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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평화의 수호자인가, 권력의 희생양인가 … 군인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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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 무렵 전장에 서 있는 무명의 독일 병사. 저자 볼프 슈나이더는 “이 병사가 죽었는지 또 적을 얼마나 죽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런 군인들이 수백만 명 이상 아무 의미 없이 비참하게 죽어간 사실만큼은 분명히 안다”고 적었다. [사진 열린책들]

군인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열린책들
584쪽, 2만5000원

2001년 여름 뉴욕 맨해튼에 있는 세계무역센터(WTC)를 방문했다. 색색의 대형 펼침막이 커다란 로비에 가득했다. 펼침막마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단어 하나가 적혀 있었다. ‘평화’ ‘Peace’ ‘平和’…. 짐작대로 세계 평화를 호소하는 전시회였다.

 그런데 석 달 뒤 테러범이 납치한 민간 여객기들이 이 건물에 날아들었다. 주저앉은 건물을 TV로 보며 희생된 숱한 사람을 생각했다. 그들과 함께 찢기고 묻혔을 숱한 ‘평화’도 함께 떠올렸다.

 인간은 항상 평화를 소망한다.(적어도 그렇게 말을 한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갈등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쟁은 인류 역사 초기부터 있어왔다. 문자가 아예 없던 아득한 옛날부터 인간은 땅과 식량, 물 같은 자원을 둘러싸고 낯선 이들과 싸웠다. 국가가 출현한 청동기시대부터 조국, 장군의 명성, 종교가 전쟁의 명분으로 추가됐다. 시간이 갈수록 전쟁은 더 커지고 잔인해졌다. 그리고 숱한 이들이 군인이란 이름으로 참전했다. 이들 중 극소수는 알렉산더처럼 영웅으로 기억되고, 일부는 히틀러처럼 괴물로 낙인 찍혔다.

 이 책이 다루는 건 이런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이름 없이 전장에 나서 대부분은 희생자로 남았던 수많은 군인을 다룬다. 적어도 3000년간 세계사를 얼룩지게 한 전쟁의 역사를 이들의 시각에서 바라본다. 여기엔 저자인 볼프 슈나이더의 개인사가 큰 역할을 했다. 독일 슈테른 편집장, 디 벨트 편집국장을 지낸 그는 『위대한 패배자』 『만들어진 승리자들』 같은 책으로 한국 독자에게 제법 알려진 사람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고교 시절을 보내고 졸업하자마자 징집돼 무너져가는 ‘제3제국’을 위해 싸워야 했다. 종전 뒤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군인이라는 존재의 혼란스러움이었다. 군인이란 무엇인가, 누가 어떻게 군인이 되는가, 왜 군인은 싸우고 피 흘리고 고통스럽게 죽어야 하는가. 저자는 이때부터 군인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고 천착해왔다고 말한다.

 책의 절반 이상은 전쟁사 개론이다. 전쟁은 언제부터 있었는지, 어떤 무기로 싸웠는지, 이를 촉발한 명분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서술한다. 최초로 전황과 결과가 상세히 기록된 기원전 1274년 카데시 전투부터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까지 동서고금의 다양한 전쟁이 조각보처럼 엮여 있다. 개별 전쟁이 상세히 설명되진 않지만, 전쟁사 교양서로 읽어볼 만하다.

 본론은 그 다음이다. 전쟁을 다룬 기존 책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부분이다. 군인을 전장으로 내몰고 싸우게 하는 시스템을 설명한다.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게 만드는 혹독한 훈련과 규율, 인간의 허영을 부추기는 훈장과 화려한 제복, 전의를 북돋우는 군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활용됐는지를 말이다. 이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냉소적이다. 그는 훈장에 대해 “두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군인의 갈망과 국가가 하찮은 비용으로 만든 다양한 색깔의 작은 쇠붙이는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썼다.

 군인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설명하는 다음 장도 마찬가지다. 군인의 죽음은 결코 우아하지 않다. 전세계 참전 기념비의 동상은 허상에 가깝다고 필자는 지적한다. 총에 맞거나 칼에 찔려 죽고, 팔다리를 자르고 겨우 살아남은 병사들은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 숫자는 나날이 늘어났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따라 나섰던 40만 명 중에서 출발점으로 살아 돌아온 군인은 5000명뿐이었다.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초기에 붙잡힌 소련군 포로 500만 명 중 절반 가까이가 죽었다. 소련군에 붙잡힌 독일군 포로 310만 명 가운데 110만 명이 강제노역을 하며 굶주림과 추위로 목숨을 잃었다.

 군인은 이런 존재였다고 저자는 거듭 강조한다. 야만스럽고 참혹한 전쟁에서 영웅보다 희생자로 남는 존재라고 말이다. 더구나 현대전쟁에선 그 자리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군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핵무기와 무인기(드론), 컴퓨터, 테러리스트, 특수부대가 전통적인 군인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전쟁이 덜 비인간적이고 덜 잔인해지는 것도 아니다. 전쟁 자체가 사라질 것도 아니다. 지구는 좁고, 자원은 유한하다.

 우울한 결론이다. 전쟁에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고 평화에 감사하는 현충일에 받아들이기에는 더욱 그렇다. 슈나이더의 조언은 이렇다. “삶에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마라! 쉰 살이 되었는데도 아직 굶어 죽거나, 얼어 죽거나, 맹수에게 찢겨 죽거나, 이웃의 사나운 부족에게 맞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석기시대에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러니 석기시대 선조들보다 극히 적은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에 기뻐하고 감사하라!”

 그의 조언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독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든다. 순국선열이 늘어나지 않게끔 평화를 유지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아닐까. 그것이 비록 영원한 평화는 아닐지 몰라도 말이다.

나현철 기자 tigerace@joongang.co.kr

[S BOX] 찔리는 게 많은 미국 … “전쟁 범죄 재판소 인정 못해”

전쟁 범죄(war crime)란 제네바 협약이나 국제법에 위배되는 범죄, 특히 군인에 의한 포로나 민간인의 살해와 학대 행위를 의미한다.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는 2003년부터 전쟁 범죄의 규정과 처벌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미국·중국·러시아·이스라엘은 이 재판소를 인정하지 않는다. 『군인』의 저자 슈나이더는 미국이 반대하는 것은 “찔리는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라고 꼬집는다.

 1945~46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는 전쟁 범죄 외에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 ‘평화에 반하는 범죄’, 즉 침략전쟁이 함께 기소됐다. 하지만 논란이 많았다. 전쟁이 일어나려면 침략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도 아직 형벌로 규정되지 않은 시절에 저질러진 행위에 대한 처벌이라는 점에서 ‘죄형 법정주의(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다.

 슈나이더는 ‘전쟁 범죄’라는 말 자체에 이미 위험하고 잘못된 전제가 내포돼 있다고 지적한다. ‘전쟁 범죄’라고 하면 ‘범죄가 아닌 전쟁’도 있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전쟁 치고 제네바 협약과 국제법을 완벽하게 지켜가며 진행된 전쟁이 있을까? 혹시 그런 전쟁이 있다면 그 전쟁은 받아들여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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