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메르스보다 무서운 과잉 공포와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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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공포증이 나라를 덮치고 있다. 1100곳이 넘는 초·중·고, 유치원이 휴업했다. 극장·백화점엔 사람이 끊기고 직장에서도 과민 반응이 늘고 있다. 누가 기침이라도 하면 주변이 휑하게 비는가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는 속속 취소되고 있다. 심지어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괴담과 소문이 돌고 돌아 불안과 공포를 확대재생산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국민은 패닉 상태다.

 일차 책임은 정부에 있다. 우왕좌왕, 뒷북 대응과 불투명한 정보 공개가 국민 불안을 키웠다. 그렇다고 정부 탓만 하며 불안과 공포에 빠져 있을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메르스의 위험성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치사율 40%는 우리보다 의료 수준이 크게 떨어진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였고 독일 연구팀에 따르면 실제 치사율은 10% 안팎이라고 한다. 발견된 지 얼마 안 된 바이러스라 맞춤형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것일 뿐 감기나 폐렴에 준해 치료하면 완치가 어렵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민 반응과 지나친 공포증은 메르스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되레 더 큰 문제를 부를 수도 있다. 1950년대 스코틀랜드 선원 한 명이 영상 19도의 고장 난 냉동창고에서 얼어 죽었다는 얘기는 메르스 사태에도 교훈이 될 수 있다. 고장 난 냉동창고에 갇혔다는 사실만으로 선원은 동사(凍死)를 기정사실화했고, 실제로 현실이 됐다는 것이다. 이는 ‘부정적 상상이 실제로 이뤄지는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를 얘기할 때 흔히 등장하는 사례다.

 메르스 같은 전염병이 진짜 무서운 점은 병의 전파력이나 치사율보다 사회 내부의 갈등과 불신, 공포를 증폭되게 만든다는 것이다. 공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놔두면 선제적이고 효과적인 방역은 애초 불가능하다. 이미 우리 사회는 불필요한 비용을 많이 지불하고 있다. 관광객이 줄고 소비도 위축되고 있다. 세월호 때보다 경제 충격이 더 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과잉 공포가 경제의 과잉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적인 감염병 전문가이자 세계보건기구(WHO)의 사무차장보인 후쿠다가 “(우리 사회의) 학교 휴업은 과잉 대책”이라고 지적한 것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정부도 국민보고 안심하라고 말만 할 게 아니다. “메르스보다 무서운 게 무능한 정부”라는 말이 왜 나오겠나. 정부부터 제대로 할 일을 해야 한다. 매뉴얼에 매여 혼자 정보를 쥐고 있어선 안 된다. 민간 전문가를 적극 참여시켜 최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불확실한 정보가 무차별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 공조도 시급하다. 외국에서 유포된 악의적 소문이 국내의 공포를 증폭시키는 경우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이른바 ‘공포의 외부 효과’다. 이미 일본·대만·홍콩 등은 국제 보건안보에 비협조적이라며 우리 정부에 대해 비판과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주변국과 바이러스, 환자 역학 정보를 공유해 국제 신인도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공포의 외부 효과’를 차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