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마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그가 가버린 오늘에야 알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서정시인 청마 유치환이 간지 l7년, 그의 구원의 여인 정운 이영도가 간지도 벌써 8년이 지났다. 이들의 플라토닉러브도 이제 세인의 뇌리에서 잊혀질 때인 지금 전혀 엉뚱한 인물이 이영도의 최후의 사랑의 편지를 발견, 책으로 펴냈다. 펴낸이는 부산에서 활동중인 여류수필가 조현경씨. 책이름은 『이영도 평전-사항은 시보다 아름다웠다.』.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가 청마가 간지 한달 후 친구시인에게 보낸 청마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 편지는 다음과 같다.
『석우 선생님(이영도의 친구시인 이윤수)
전략…20년의 열애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그 열애를 행위하지 못하고 오직 희구로서 목마른 세월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애정을 신앙에까지 승화시켜보지 못한 사람은 지금의 저의 심정을 어찌 알아주겠읍니까.
중략…인간의 애환은 아랑곳없이 세월은 물같이 흐르는 것. 내일로 청마가 간지 한달. 돋는 움, 트는 싹, 어느 하나 그분과 무관한 것이 없고, 어느 사물, 어느 자연에 그분의 체취가 묻어 있지 않은 것이 없어 차라리 모든 것을 「보지 않는 죽음」으로 두는 것이 좋을 것 아닌가도 싶어집니다.
선생님, 청마의 애정에 질질 끌리는 먼먼 세월 속에 제가 얼마나 청마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그가 가버린 오늘에야 깨달을 수 있구먼요. 이럴 줄 알았던들 좀더 흐뭇하게 애정 할 수 있었을텐데…. 오직 남은 세월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가 제게 남은 형벌 같습니다.… 후략』
정운 이영도 (76년작고) 의 평전 『사랑은 시보다 아름다웠다.』에 실린 바로 이 문제의 편지는 청마 사후 (67년) 한달 지나 쓴 것. 한국문단의 플라토닉러브의 주인공이었던 청마-정운 간의 애틋한 사랑이 새삼 가슴을 울려준다.
일찌기 부군과 사별한 이영도는 외딸과 함께 단둘만의 조용한 일생을 보냈는데, 시인 청마 유치환은 그에게 20년간 5천 통의 편지를 띄울 정도로 지극한 사랑을, 바친 것으로 유명하다. 어떤 때는『우리의 사랑을 공개하여 세속들을 놀라게 하자.』 고 까지 했다.
평전을 쓴 저자 조현경씨는 거제도 출신의 여류수필가로 청마·정운과는 전혀 만나보지도 못한 인물.
그러나 어느 겨울날 새벽 이영도의 꿈을 꾸고 평전을 쓰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책 앞머리에서 밝히고 있다.. 그후 우연하게도 청마·정운의 이야기를 듣는 경우가 많아지고 자료수집도 힘들이지 않고 잘 진행되었다고 전한다.
평전은 청마-정운 간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그 정한의 아픔이여」 「20년 열애, 청마와 더불어」 「인생찬가」 「이영도 연보」로 꾸며져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