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프로야구] 400호 이승엽 “이제 홈런은 내 인생의 보너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이승엽이 3일 포항 에서 열린 롯데전 5-0으로 앞선 3회 말 KBO 리그(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통산 400호 홈런을 쏘아올리고 있다. 이승엽은 “400호 홈런이 내 마지막 홈런 기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항=뉴시스]

이승엽(39·삼성)의 스윙이 벼락같이 돌아갔다. 순식간에 터진 포항구장 팬들의 함성이 타구를 더 멀리 보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쭉쭉 뻗은 타구는 오른쪽 스탠드를 넘어 장외에 떨어졌다. 이승엽이 3일 롯데전 5-0으로 앞선 3회 말 구승민으로부터 솔로홈런을 날리며 KBO 리그(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400홈런 고지에 올랐다.

 1995년 삼성 입단 후 21년 만에, 한국 프로야구 13시즌 만에 400홈런을 때린 이승엽을 모두가 축하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이 더그아웃 앞으로 나와 그를 포옹했다. 이닝이 끝난 뒤 시상식이 열리자 아버지 이춘광(72)씨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아내 이송정(33)씨는 “오늘 홈런이 나올 것 같다고 큰아들이 졸라서 포항에 왔다. 남편이 정말 듬직하다”고 축하인사를 건넸다. 상대팀 주장 최준석(32)도 그라운드에 나와 축하를 전할 만큼 이승엽의 한 방은 프로야구 전체의 축제였다.

 이승엽이라는 이름이 곧 홈런의 역사다. 21세였던 97년 역대 최연소 홈런왕에 오른 걸 시작으로 다섯 차례나 홈런 타이틀을 차지했다. 2003년 세계 최연소(26세10개월4일), 최소 경기(1075경기) 300홈런을 달성한 그는 당시 한 시즌 아시아 최다인 56홈런을 기록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8년 동안 때린 159홈런을 빼고도 이승엽은 KBO 최다 홈런을 기록 중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슬러거에게도 홈런은 참 어렵다. 또 짜릿하다. 400홈런 달성을 앞두고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한 이승엽은 “야구 참 어렵다. 이렇게 힘든 적은 처음이다. 아니, 예전에도 슬럼프는 있었다. 그런데 그건 다 지나간 거고 지금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까지 26경기에서 홈런 7개를 쳤지만, 5월 24경기에선 2개에 그쳤다.

 홈런은 힘과 기술, 타이밍이 완벽해야 나올 수 있는 타격의 최고 결정체다. 컨디션이 좋을 땐 홈런을 하루 2~3개도 쉽게 날리지만 나쁠 땐 ‘홈런 스페셜리스트’ 이승엽도 한 달에 한 개 치기도 어렵다. 그는 “어렵기 때문에 홈런 치는 게 재미있다”며 웃었다. 숱한 실패와 좌절, 그리고 영광 끝에 이승엽은 홈런 400개를 쌓았다. 그와 홈런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승엽이 롯데전에서 400호 홈런을 날린 뒤 둘째 아들 은엽을 안고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아래 사진은 이승엽의 홈런이 터졌을 때 포항구장 전광판에 축하 영상이 나오는 장면. [포항=뉴시스]

 - 지난해까지 390개 치고 올해 10개 남겼는데.

 “7개까지 쉬웠는데 8개째부터 힘들었다. 원하는 스윙이 나오지 않았고, 나 자신에게 나쁜 최면을 건 것 같았다. 그러면서 계속 미궁에 빠졌다. 투수와의 승부에 앞서 나와 싸워 이겨야 하는데 나 자신에게 졌다. 투수를 자신 있게 쳐다본 뒤 자신 있게 스윙 하는 것, 그것부터 안 됐다.”

 - 그렇게 야구를 잘했으면서 아직도 어려운가.

 “그나마 경험이 많으니까 타율을 3할 가까이 유지한 것이다. ‘나이 먹어서 투구에 대한 반응이 느려졌나’는 등의 걱정을 하게 됐다. 지난 5월 초에는 정말 최악이었는데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서광이 비춘다고 해야 할까.”

 -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홈런을 쳐 왔다.

 “아마 홈런 기록으로는 KBO 400홈런이 마지막일 것 같다. 남은 목표는 한국 통산 2000안타(현재 1761개)다.”

 이승엽은 2004년부터 8년 동안 일본에서 뛰며 159홈런을 쳤다. KBO 400홈런과 더하면 개인 통산 홈런은 559개다.

 - 한·일 통산 600홈런까지 41개 남았다.

 “어쩌면 해낼 수도 있겠지만 쉽지 않다. 95년 데뷔 후 21년 동안 늘 성적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었다. 앞으로 나오는 홈런은 보너스로 생각하겠다.”

 - 시즌 56홈런, KBO 400홈런은 깨지기 어려울 것 같다.

 “아니다. 박병호(29·넥센)라면 할 수 있다. 조금 늦게 잠재력이 폭발(현재 172홈런)해 그렇지 앞으로 10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칠 수 있다. 부상이 없다면, 해외로 가지 않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시즌 56홈런은 박병호가 아니라도 칠 수 있을 거고.”

 - 홈런 기록이 깨지면 서운하지 않겠나.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 아닌가. 난 8년 동안 일본에서 뛰었으니 후배가 나를 넘어서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일 통산 500홈런을 넘겼으니 난 그걸로 만족한다.”

 14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500홈런을 넘긴 타자는 총 26명이다. 이승엽의 한·일 통산 559홈런을 빅리그 순위에 대입하면 14위에 해당한다.

 - 어느 홈런이 가장 기억에 남나.

 “광주에서 해태 이강철 선배님의 커브를 받아 쳐 프로 첫 홈런을 쳤다. 삼성 타자가 홈런을 치니까 해태 팬들이 조~용하더라. 고개 푹 숙이고 다이아몬드를 빨리 돌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며 운명이 바뀌었다.

 “삼성 입단 후 왼 팔꿈치 수술을 받고 쉬다가 당시 우용득 감독님과 박승호 코치님이 한 달만 타자를 하라고 하셨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열심히 하다 보니 95년 타율 0.285, 홈런 13개를 쳤다. 그래도 투수를 하고 싶었다. 구단에서 “1년만 더 해보자”고 하더라. 97년 홈런왕(32개)과 최우수선수를 차지했다. 그때는 투수를 하라고 해도 내가 안 했을 거다.(웃음)”

 - 이후 ‘국민타자’라는 칭호를 들었다.

 “98년 타이론 우즈(당시 OB)에게 홈런왕을 아쉽게 빼앗겼다. 99년 43홈런으로 신기록을 세운 뒤 54홈런까지 쳤다. 그땐 홈런이 어렵지 않았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팬들의 환호…. 지금 생각하면 ‘내가 많은 사랑을 받았구나’라며 감사하게 된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 이후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다.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요미우리 4번타자로 활약하기도 했고 2군에 떨어져 고통의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어린 아들이 “아빠는 왜 TV에 안 나와?”라고 물어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 은혁(10)·은엽(5) 두 아들이 참 좋아하겠다.

 “올해 내가 교과서에도 등재되고 하니까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하더라. 영광스럽고 고마운 일이다. 가끔 은혁이가 뜬금없이 ‘아빠가 자랑스럽습니다’라고 한다. 은엽이도 ‘아빠, 오늘 홈런 쳤죠?’라며 알은척한다.”

 - 아빠처럼 야구 선수가 되려 하지 않나.

 “난 야구를 참 힘들게 했다. 물론 내 노력 이상으로 보상받았지만 내 아들이 야구 하는 건 말리고 싶다. ‘네 아빠는 야구 잘했는데 넌 왜 못하니’라는 소리를 들으면 아빠 마음이 어떻겠나. 그렇다고 공부 잘하라는 소리는 안 한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은혁이가 요즘 대구 리틀야구팀에 들어갔다(웃음). 선수가 되는 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야구는 교육적으로 참 좋기 때문이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프로야구 전적(3일)

▶삼성 8-1 롯데 ▶두산 8-1 KIA ▶kt 4-2 SK
▶한화 6-2 넥센 ▶LG 8-4 NC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