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조이권특파원이 돌아본 상해의 풍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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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인구1천2백만의 상해. 중공최대의 도시 상해는 바로「인해」였다. 어느곳을 가나 언제나 사람의 물결로 홍수를 이루고 있다. 연말연시 한국의 명동거리와도같이 항상 사람들로 넘실거린다.
상해최대의 번화가인 남경로엔 집단시위를 벌이는것같은 사람의 행렬이 5㎞나 이어지기도 한다.
상해는 우리나라처럼 정해진 일요일이 별도로 없다.
직장과 작업장별로 1주일가운데 윤번제로 하루를 정해서 쉬고있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인파를 조절하기 위해서다. 인구의 과다는 곧 심각한 교통문제를 야기시킨다.
상해의 대중교통수단은 자전거. 택시와 자가용도 있지만 이것은 외국인이나 상류층위주로 이용한다. 자전거는 가구당 1.5∼2대꼴. 작년에 상해에서 생산된 자전거만도 5백20만대에 이르고 있으며 상해시의 현재 자전거수는 약2백70만대로 추산되고있다. 자전거외의 대중교통수단은 시내버스와 무궤도전차 (트로리 버스) 로 2대의 버스가 궤도없이 전기로 움직인다.
요금은 무궤도전차가 4분(약13원), 시내버스는 5분(약16원).
상해시는 교통난을 해소하기위해 시중심지 13.51㎞의 지하철공사를 착수, 90년에 완공할 예정이다. 이밖에 20개도로를 신설할 계획을 세우는등 총1천4백10만원 (약45억원) 의 예산을 투입할예정이다.
중공은 이같은 교통체증과 인구문제를 해결하기위해 「1가구1자녀」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아직은 1가구 2명이 보통이나 3명이상이면 각종혜택이 줄어들고 월급도 오르지 않는다. 한국기자단이방문한 상해제1염색공장의 안내판에는「견지만혼」(결혼을늦게하자)「계획생육」등의 포스터가여기저기에 붙어있었다.
70년대에 시작된 1가구1자녀운동으로 상해시민의 97%가 산아제한을 하고있으며 83년의 평균수명은 남자가 71.2세, 여자가 75.3세.
인구억제정책에따라 인구증가율도 70년의 2.6%에서 80년에는 1.07%로 떨어져 10년간 누계로 6천8백만의 신생아가 감소한것으로 집계되고있다.
인구억제와함께 사회복지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하고있다.
여자가 임신8개월이 되면 휴가를 받게되고 산후에는 직장에따라 45일에서 1년간의 휴식기간을 갖는다. 이 휴가기간에도 똑같은 월급이 지급되고있다. 정년은 보통 남자가 55세, 여자는 50세로 직급에따라 퇴직금과함께 연금이 죽을때까지 주어진다. 그러나 집단농장인 상해현홍교향(인민공사) 의 정년은 남자65세, 여자 60세로 최근에 바뀌었다.
상해는「현대속의 고도」로 유서깊은 역사의 향기를 듬뿍 풍겨준다. 20∼30년된 플라타너스가 울창하게 뻗어나 터널을 이루고 있다.
건물들은 대부분 20년대의 것으로 고색이 창연하다.
시민들의 복장은 80∼90%가 푸른색의 중산복. 한벌에 13원(약4천20원)하는 이중산복은 상해는 물론, 중공서민들의 평상복이며 작업복이다. 이따금 청바지 차림의 젊은 남녀들도 눈에 띄어 중공에서도 서서히 서구의 물결이 밀려오고있음을 볼수있다. 공원이나 한적한 거리에는 팔장을 끼고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상해의 물가는 생활필수품은 무척 싼편이지만 전자제품등은 무척 비쌌다. 쌀과밀가루, 그리고 기름만은 배급제. 쌀과 밀가루의 한달1인당 배급량은 직업과 나이에 따라 각기 다르다. 가장 고된 육체적근로자가 월45근(1근은 5백9g임) 으로 가장많고 운동선수와 예술인이 42근, 사무원이 32근.
중산층의 평균월급은 60∼80원 (약 1만9천∼2만6천원). 최저 60원에서 최고 2백30원에 이르고 있으나 최고월급자는 군장성·대학교수·고급공무원등. 23년간 북경방송에서 근무한 어느기자(42)는 1백60원이었다.
물가가 비싸고 사람홍수로 시달리는 도시민에 비해 농민들은 훨씬 잘사는 편이었다. 상해현홍교향익 어느농민의 연수입이 1천4백원으로 의사의 월급을 능가한다. 그래서 몇년전만해도 농촌처녀들이 도시로 시집가기를 원했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도시처녀들이 농촌총각을 결흔상대로 택할만큼 풍속이 크게 바뀌었다는것.
광대한 국토의 중공은 풍부한 관광자원과 요리(요리)의 나라로 알려져있다.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 주니어 농구대회에 참가한 중공의 한임원은 처음 한국에 와서 두가지에 놀랐다고 말한적이 있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한국의 모습보다 너무 큰 차이에 처음 놀라고, 중공에대한 엄청난 관심과 주목에 두번째로 놀랐다고했다. 그래서 이 중공임원은 한국선수단이 중공에 오게되면 관광과 요리의 두가지로 놀라게 해주겠다고 농담을 한적이 있었다. 이 임원의 말대로 중공의 절경과 요리솜씨는 놀랄만했다.
중공최고의 관광지인 항주의 서호는 한폭의 동양화에 비유될만큼 절경이었다. 주변이 15㎞인 서호는 호수안에 섬이 있고 섬안에 또다시 호수가있어 아름다운 경치의 극치를 보여준다. 송대의 시인 소동파가「상유천당 하유소항(소주와 항주)」(하늘에는 천당이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있다)이라고 극찬한 바로 그곳이다. 이탈리아의 여행가「마르코폴로」도『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곳이 서호』라고 칭찬하기도했다.
이같은 풍부한 관광자원으로 중공은 작년에 1백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했다.
북경·천율과함께 중공의3대직할시의 하나인 상해는 19세기 구미각국의 아시아침략본거지가 된 역사적 도시.
66년 문화혁명의 사실상발상지이기도하다. 이같은 상해는 우리나라역사와도 깊은 관계가있다.
홍구공원은 32년4월29일 24세의 애국청년 윤봉길의사가 폭탄을 투척, 일본육군대장「시라가와·요시노리」(백천의칙) 대장을 죽인 곳이다.
중공의 혁명작가 노신의묘와 동상이 서있을뿐 상해시민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거의 모르고 있는듯했다.
상해에 살고있는 교포는 해방당시1천여명에서 현재는1백명정도로 줄었다는것. 제10회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때는 20여명의 교포들이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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