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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는 마르코스 체제 기댈언덕을 찾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필리핀 정국은 7천여 섬으로 나누어진 그 영토처럼 여러갈래로 얽힌채 좀처럼 수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 전야당지도자 「아키노」암살사건 진상조사에 대한 결과발표는「마르코스」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은데 그치지않고 그 파문이 군부에까지 미쳐 정국의 혼란과 함께 군부의 친위쿠데타 우려까지 낳고 있다.
마닐라공항과 정부청사등 주요시설을 지키는 경찰군과 방위군의 모습에서도, 「아키노」에 대한 애도의 감정이 채 가시지않은 시민들의 표정에서도 「쫓기는 군부」의 인상이 역력했다. 시민들사이에서는 8년동안 지속된 계엄통치의 악몽을 되새기는 이야기들도 자주 들려오고 있다.
표면적으로나마 정치적 중립을 지켜온 필리핀군부의 균형이 깨진것은 「아키노」사건의 책임을 묻는 학살이 그심장부에 꽂히고서부터였다.
4대1로 기울어진「아키노」암살사건 5인사문위는 이 사건의 주모자로 「마르코스」의 오른말인 「파비안·베르」전군참모총장을 지목했고 국내여론과 미국의 압력은 사건전모 발표직후인 24일 그를 현직에서 쫓아내고 말았다.
첫 쿠데타설은 이때 나돌았다.
「베르」와 그 추종세력들이 군부대의 반대파인 「피델·라모스」 신임군참모총장의 득세를 호락호락하게 허용하지 않을것이며 사문위의 조사결과와 「마르코스」의 해임조치에 반발할지도 모른다는 추측과 함께였다.
마닐라의 한 서방외교관은 그러나『「베르」가 반역할 인물은 결코 아니며 설사 그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난다하더라도 이는 「마르코스」의 난처한 입장을 두둔하기위한 조직된 반란일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견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한때 자신의 결백을 내세우던 「베르」는 재판절차를 준비하도록한 「마르코스」의 주문을 순순히 받아들여 긴장된 사건의 표면에서 사라지는듯했다.
그러나 「베르」 와 「라모스」를 각각 정점으로 한, 전통적으로 대립되어온 군부 양세력간의 투쟁은 이를 시점으로 가열되기 시작했다. 「라모스」 휘하의 소장파들에 의한 반대파축출-정군작업소문이 나돌면서 이를 견제하기위한 「베르」파의 「충성성명」이 뒤따라 「마르코스」의 발판아래서 암투로 지속되어오던 대립은 드디어 불꽃을 튀기는 양상으로 바뀐것이다.
필리핀일각에서는 이 대립이 군부안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로 터져나올 경우 필리핀에 쿠데타의 가능성이 있으나 이 또한「마르코스」를 위한 친위적인 성격일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필리핀 자유법률지원그룹(FLAG)의「조커·아로요」회장은 『충성선언서가 국가나 참모총장직이 아닌 「베르」 개인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편파적인 감정에 치우친 느낌』이라고 말했고 「르네·사귀삭」변호사 또한 『이선언서야말로 군부가 필요할 경우 쿠데타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마르코스」 정권의 말기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는것은 이같은 군부의 갈등외에도 확고한 배후로 믿어온 미국의 대필리핀 태도변화를 들수 있다. 「레이건」대통령 자신은『대안이 없기때문에「마르코스」를 지지한다』는 식으로 궁색한 입장이고 미행정부 또한 필리핀안의 미군사기지 이전검토를 밝혀 상황에 따라서는 필리핀과의 유대관계가 멀어질 가능성도 있다.
「마르코스」 체제는 흔들리고있다. 그가 기eof 언덕을 찾을것인지, 그 어느 누구도 예견할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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