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문재인 ‘국회법 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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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 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경제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뜻을 밝혔다. [박종근 기자]

국회법 개정안이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정면충돌을 불렀다. 여당 대표는 한 발 물러섰지만 이번엔 국회의장 산하 국회사무처가 청와대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나서 청와대와 국회의 충돌로까지 확전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1일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회가) 공무원연금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관계없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문제를 연계시켜 위헌 논란을 가져오는 국회법까지 개정했는데 이것은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 걱정이 크다”며 “국회법 개정안을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정부의 정책 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과 경제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국회에서도 이번 개정안과 동일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에 대해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않은 전례가 있는데 이것은 국회 스스로 이번 개정안이 위헌 소지가 높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가 위헌 논란을 해소하지 않은 채 정부에 그대로 이송할 경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 것은 그만큼 문제가 심각하고, 정파적 입장에서 접근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정면으로 치받았다. 문재인 대표는 “박 대통령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한다. 법안이 통과될 때 이미 3분의 2가 넘는 의원이 찬성했는데 거부권 행사를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문 대표는 “시행령이 법률 취지에 맞지 않는 경우 국회가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여야가 합의해 통과시킨 법을 청와대가 무산시키면 6월 국회의 원활한 운영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도 경고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진퇴양난이다.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을 재의(再議)해 다시 통과시킨다면 당·청 관계는 완전히 파국이다. 대통령 임기가 절반 이상 남은 상황에서 여당이 가기는 힘든 길이다. 김무성 대표가 이날 “대통령 뜻과 당의 뜻이 다를 수 없다”며 한 발 물러선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개정안을 재의하지 않고 묵살할 경우엔 새정치연합이 국회를 전면 보이콧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황교안 총리 후보자 인준안을 비롯, 각종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에도 지장이 생긴다. 당내에선 친박계가 지도부 책임을 묻고 나서는 등 후유증이 클 수 있다.

 이런 와중에 국회사무처는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국회법 개정의 의미는 법률의 위임에서 벗어난 행정입법을 합리적으로 수정해 국회 입법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여권 관계자는 사무처가 대통령의 주장을 논박하는 자료를 낸 데 대해 “정의화 국회의장의 의중”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지난해 11월 시행령이 법률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국회가 정부에 시정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발표한 일이 있다.

글=김정하·위문희 기자 wormhole@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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