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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장품·두부 … 중국 울릴 것 또 없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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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

1980년대 중반 군복무를 하던 친구들이 휴가를 나와 풀어 놓는 무용담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가 있다. 복무 중 장비를 분실했을 때 종로에 있는 세운상가에 가면 다 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얘기는 비약하여, 세운상가의 기술을 다 모으면 탱크도 만들고 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제 사람들은 이제 중국 선전에 있는 기술들을 다 조합하면 인공위성도 쏘고 우주정거장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을 떠올리면 항상 따라오는 단어가 ‘속도’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유사품, 복제품, 허술한 품질관리, 저가공세 등의 이미지가 주된 것이었다면 지금은 ‘도저히 중국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들 한다. 사람들은 이런 중국의 약진이 그저 10년쯤 된 것으로 착각을 한다. 애플의 아이폰을 만들고, 테슬라도 조립하고, 소프트뱅크의 감성로봇인 페퍼까지 생산할 예정인 폭스콘의 테리 궈 회장이 대만에서 창업한 것은 1974년이다. 중국본토에 공장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도 1988년이다. 폭스콘도 90년대 후반까지는 한국 기업에서 주문을 받아 컴퓨터의 메인보드를 생산하던 기업이었다. 궈 회장에게 물량을 할당해 주던 한국기업이나 미국기업들 대부분은 이제 그에게 물건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40년이 걸렸다.

 싼 인건비와 대규모 노동력으로 전 세계의 공장이 되고자 애써왔던 수십 년의 시간을 견뎌 낸 중국이 이제는 세계의 공장을 넘어서서 혁신의 선도자가 되고 있으며 동시에 혁신제품의 소비시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온라인게임 서비스기업들은 한국게임을 서로 가져가기 위하여 그야말로 전쟁을 벌이곤 했다. 한때, 한국 기업이 만든 고가 스마트폰이 중국인들의 신분의 상징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중국 대도시에 새롭게 여는 고급호텔의 방에는 삼성과 LG의 TV가 반드시 들어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게임도, 스마트폰도, TV도 잘 만든다. 적어도 IT산업에서 중국은 더 이상 만만했던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일례로 얼마 전 페이스북·드롭박스 등에 투자를 했었던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로부터 대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드론 전문기업인 DJI테크놀러지는 선전에 있는 중국기업이다.

 지난 수 년간 제조나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벤처기업들이 투자를 받으러 오면 항상 물어보던 일종의 벤처캐피털 공식질문이 하나 있었다. ‘만약에 중국기업이 추격을 해서 저가공세로 몰아 붙이면 어떻게 그 경쟁상황을 이겨나가려고 하는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라고 해봐야 약 3개월 정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3개월의 시간은 IT산업에 있어서는 격차로 볼 수도 없어서 이런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걱정이 되는 것은 미래의 중국이다. 우리 경제가 성장정체기에 접어 들고 있는 이 순간에 중국은 신흥전략산업에 수 백조를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 특히 벤처기업들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중국과 싸울 것인지, 중국을 피할 것인지, 중국과 함께 갈 것인지에 대해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물론 모든 분야에서 한국이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의 경우 중국축구는 여전히 공한증 (恐韓症 )에 사로 잡혀 한국 축구를 쉽게 이기지 못한다. 20년 넘게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화장품 분야도 중국기업이 아직은 감히 그 수준을 넘보지 못한다. 중국 관광객들의 구매 품목 중에 정말로 이해가 안되는 제품이 ‘두부’다. 자국의 제품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두부를 제일 먼저 만든 나라가 한국의 두부를 사가고 있다. 중국에게 축구를 이겼다고 기뻐하고, 중국 관광객이 두부를 많이 사가더라며 즐거워하고 있을 수 만은 없다. IT 분야에서도 이렇게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춘 제품이나 서비스가 나와주면 좋겠다.

 자,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