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8) 알레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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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K씨는 동물실험실에서 모르모트·흰쥐·토끼 등의 실험동물 사육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이일을 시작한지 4개월 째부터 실험동물들을 만지거나 그 배설물을 치울 때마다 손등이 가렵고 벌게지며 부풀어오르기도 하고 재채기가 몇 번이고 반복되며 콧물이 흐르고 눈도 충혈되는 증상이 나타났다.
P씨는 유명 제빵회사에서 3년 전부터 일하고있는데 밀가루부대에서 밀가루를 컨베이어벨트에 쏟아 붓는 일을 하고있다. 1년 전부터 직장에서 일하는 낮 동안에만 수시로 재채기·콧물의 증상이 나타나곤 했는데 밀가루가 날릴 때만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고 상사에게 얘기해 근무 부서를 밀가루가 날리지 않는 포장부로 바꾼 후부터는 증상이 없어졌다.
L씨는 가구공장에서 일하는 도료공.
도료를 가구에 칠하고 나면 영락없이 천식증세가 나타나 고생한다고 호소한다.
얼마 전에 휴가를 얻어 시골에 다녀왔는데 그동안은 전혀 증상이 없었다.
앞의 예는 모두가 직업성알레르기 환자들이다. 즉 직업상 접촉하게 되는 어떤 특정한 물질이 항원으로 작용해 알레르기 증세를 일으키는 것을 직업성 알레르기라고 한다.
직장에 나가기만 하면 증상이 나타나고 주말이나 휴가로 직장을 떠나 있으면 증상이 사라지는 것이 특징이다.
직업 알레르기의 증상이 나타나려면 일정한 감작기간, 즉 환자가 작업장에서 반복해서노출 혹은 접촉하게 되는 항원물질에 과민하게 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직장을 갖고 나자 곧 증상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보통 수 주내지 수년이 지나고 나서야 직업성 알레르기가 나타난다.
직업성알레르기는 1700년대부터 제빵·제과업자들에게서「빵집천식」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알려지게 되었고 그 후 구미의 가축목동들 사이에 흔한 동물의 비듬에 의한, 천식 약국의 약제실에서 약사들이 약 가루를 들여 마심으로써 생기는 약사천식, 도서관사서들이 오래 묵은 책 먼지를 털어내는 등 도서정리를 할 때 책 먼지에 의해 발생하는 도서관 사서 천식, 제재소에서 목수들이 나무가루를 들여 마심으로써 생기는 제재소천식, 누에를 치는 양잠업자에게서 발생하는 양잠천식, 정원사나 꽃꽂이 연구가에게서 발생하는 직업성 꽃가루병 등이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
직업성 알레르기의 치료는 원인물질로부터의 회피가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을 옮기는 것이 가장 좋겠으나 여의치 못한 경우가 많으므로 같은 직장에서 근무 부서를 옮긴다든지 혹은 직장에 출근하기 전에 미리 예방제를 투약한다든지 하면 효과적인 경우가 많으며 면역요법을 해서 효과를 보았다는 보고도 많이 나와 있다.
중요한것은 산업과 의학의 협조와 공동작업으로 원인을 모르고 고생하는 직업성 알레르기 환자들을 찾아내 적절한 치료 및 예방조치를 취해주는것이 최선의 방법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김유형<서울대병원 알레르기내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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