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한잡기|최내옥<한양대·국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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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어느 서해안에 자그마한 어촌이 하나 있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한 이 어촌근처에 대학이 들어서고 공단까지 들어서자 갑자기 활기를 띠고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하였다. 제법 항구티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3년전에 친구 셋이서 3천원이면 그런대로 잘먹고 돌아오면서, 바닷가쪽에있는 논 너댓마지기의 벼를 한번 만져보고 올수 있었다. 갯벌과 바다를 바라보고, 벼가 잘 자라서 익은것만 보아도 농촌출신인 나는 마음에 뭉클한 감동을 받았다. 그바쁜 바다생활에서도 벼를 잘 기른것이 고마왔다. 그 이듬해인 재작년에는 5천원을 가지면 먹을만 하였다. 생선이나게를 집에 사가지고 오기도 하던 재작년, 그러다가 작년에는 7천원정도를 가지면 먹을만 하였다. 고기값이 무척 올라서 이제 집에 사가지고 가는 일은 뜸하여졌다. 그보다 그 논을 잘 건사하지 않아서 벼위로 피가 싱싱하고도 우람하게, 아니 무성하게 자란 논을 보는 것이 눈아팠다. 벼가 논주인 노릇을 피나 다른 잡초에게 양보하고 있는 모습을 보기가 안스러워서 나는 길가 손이 닿는 곳에 있는 피를 뽑아주고 지나가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논농사보다 음식점에서 또 바다에 나가서 고기잡는 것이 나은 모양이다.
금년 다시가본 그 어촌은 집집마다 대형 어항을 이층삼층까지 만들어 물이 철철 넘치게 하여 물고기가 살아 돌아다니게 하였다. 물레방아도, 분수도, 물표범도, 구경할수 있게, 그리고 넓게 식당을 만든 천장에서는 플래스틱 박이며 등나무를, 창가에서는 플래스틱 난초를 실컷 구경할수 있게 되었다. 값은 무척 비쌌다. 세 사람이 회와 매운탕을 먹으려면 2만5천원, 약소하게 하면 2만원.
작년까지 그런대로 짓던 농사를 금년에는 아예 폐농한것이다. 벼를 심지 않았다. 피만 무성하게, 활기차게, 우람하게 온 논 닷마지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제 그들은 그 논에 농사를 짓지 않는다.
돈많은 사람이 자가용 타고 와서 값만 올리고 치장을 잘하게 하였다는데, 그래서 다른 큰 항구에 가서 생선을 받아다가 판다는데, 이 어촌인심 각박해진 것은 시대조류에 따라 당연한 일이라 하고 외지사람이 분위기를 망쳤다고 하는데다 농사는 폐농이라서, 그리고 이 어촌만의 사정은 아닌것 같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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