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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에 희망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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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

누구나 심장은 왼쪽에 있다. 젊었을 때 나는 ‘심한’ 좌파였다. 철이 든 다음에는 중도파 내지는 중도우파가 됐다. 사회주의는 전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를 시도하면 상황이 더 나빠진다. 대부분의 사람이 더 가난하고 덜 자유롭게 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또한 엉망진창이다. 시민들이 일자리와 지붕이라는 기본적인 삶의 여건을 누리는 나라는 많지 않다. 경제위기가 주기적으로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파산하고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민주주의에서 정치는 그 무엇보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다. 보수의 승리 어젠다는 명확하다. 안정, 자유 기업, 경제적 효율성이 우파의 단골 선거 메뉴다.

 좌파로 살아가는 것은 더 힘들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나 한국·미국의 ‘리버럴’(liberals)은 보수 우파가 약속하는 것에 추가해 플러스 알파를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영국의 노동당은 비슷한 처지다. 영국은 지난 7일 총선을 치렀다. 박빙이라던 여론조사와 달리 뚜껑을 열어보니 보수당이 압승했다. 노동당 학살로 끝난 선거 결과 때문에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길래 내가 뭐라고 하던가요?’라고 또 다른 밀리밴드가 말했다. 노동당 내 노선 갈등은 글자 그대로 ‘집안 싸움’이다. 전 외무장관 데이비드 밀리밴드는 2010년 노동당 당수로 유력시됐다. 하지만 당수 자리를 낚아챈 것은 동생 에드 밀리밴드였다. 야심은 같아도 노선은 달랐다. 데이비드는 노동당을 18년 광야 생활에서 도성으로 이끈 토니 블레어 총리(1997~2007년 재임)처럼 기업친화적이다.

 대조적으로 에드는 보다 사회주의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에드는 보다 반자본주의적인 노선이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럴듯한 승부수였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데이비드 밀리밴드나 다른 블레어주의자들(Blairites)은 ‘고소하다’는 심정일지 모른다. 이제 노동당은 새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누가 당수가 되건 2020년에 정권을 탈환하려면 새로운 정책 비전을 마련해야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새정치민주연합 또한 2016년 총선, 2017년 12월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새정치연합의 승산이 높다. 슬프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 성취한 것이 별로 없다. 집권 후반기도 비슷할지 모른다. 연달아 보수파 리더가 승리했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변화를 바랄 것이다. 2007년 이명박 후보가 ‘리버럴’ 정부 10년을 압승으로 종식시킨 것처럼 말이다.

 ‘이론’과 달리 ‘현실’은 암울하다. 현재로선 새정치연합의 선거 승리 가능성은 없다. 국민 앞에서 대놓고 싸우고 있다. 서로 욕설을 주고받으며 파벌 싸움을 한다.

 뭉치는 게 힘이다. 여러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도 ‘리버럴’이 절실하게 실천해야 할 경구다. 반대로 분열은 힘을 죽인다. 명백히 근본적인 이 사실을 새정치연합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한국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솔직히 호남과 영남이 아직까지 반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도 두 지방 사이의 과거사는 안다. 과거는 과거에 맡겨야 한다. 특히 진보주의자라면 무엇보다 그러한 시대착오적인 갈등을 극복해야 한다.

 내키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뭉쳐야 한다. 선거는 덧셈·뺄셈이라는 것을 김대중은 잘 알았다. 경상도 인구가 전라도보다 더 많기 때문에 그는 충청도 표가 필요했다. 1997년 그는 김종필과 연대했다. 중앙정보부는 DJ를 죽이려고 했다. DJ는 중앙정보부의 초대 부장인 JP와 힘을 합쳤다. 박지원과 문재인이 화해하지 못할 이유는 대체 뭔가.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단결한다면, 승리는 가시적이 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41%의 응답자가 새누리당에 대한 대안을 바란다. 2012년 문재인은 아깝게 졌다. 다음번에 새정치연합은 더 잘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단결은 시작에 불과하다. 야당이 승리하려면 승리를 부르는 정책이 필요하다. 더 많은 복지? 불행히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미 복지 아이디어를 훔쳐 승리했다. 연금과 세금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을 고려하면, 다음번에 공짜 점심을 약속하는 후보를 유권자들이 여간해서는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북방정책? 이 또한 쉽지 않다.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불규칙하고 더 위험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햇볕정책으로 복귀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인들은 정치권의 부패와 노회한 여야 정치인들에게 지쳤다. 한국 유권자들은 보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갈망한다. 2012년 대선 결과는 한국의 진보가 득표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의 승리는 중간·중도 유권자를 확보해야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두 가지만 교훈으로 삼아도 새정치연합은 2016년 총선에서 이기고 2017년에는 청와대를 탈환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놀이터의 어린아이들처럼 옥신각신한다면 어떤 유권자가 새정치연합을 신뢰하고 국가 운영을 맡기겠는가.

에이단 포스터-카터 영국 리드대 명예 선임연구원